‘선거공보에 수어영상 삽입=정치자금법 위반’ 유권해석
地選 앞두고 대전농아인협회 반발…선관위 “입법의 문제”

 
청각장애인들을 위해 제작한 선거공약 수어(手語) 영상. 대전농아인협회 제공

“청각장애인도 대한민국 국민이다. 알권리를 박탈하지 말라!”
6·13 지방선거가 채 한 달도 남지 않은 가운데 대전지역 농인(聾人)들이 공분을 표출하며 선거관리위원회가 청각장애인들의 참정권을 박탈하고 있다고 반발, 논란이 일고 있다.

한국농아인협회 대전시협회는 16일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시행된 지 올해로 10년이 됐지만 장애인들의 실질적인 기본권 보장에는 갈 길이 멀다”면서 “지방선거를 앞두고 장애인과 그 가족들이 평등한 참정권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실상 후보자들의 공약을 제대로 전달받기 어렵다. 선관위는 장애인뿐 아니라 노인, 다문화가정을 포함해 문해(文解) 능력이 떨어지는 주권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선거정보를 제공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대전농아인협회는 “대전시립손소리복지관과 함께 지역 청각·언어장애인들의 참정권과 후보자들의 공약을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 선거공보물에 QR(Quick Response) 코드를 삽입해 ‘선거공약 수어(手語) 영상’을 제공하고자 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선관위에선 선거공보물에 수화영상을 넣는 것이 ‘정치자금법 위반’이라고 한다”라고 밝혔다.

이들은 “점자공보물의 경우 시각장애인을 위해 의무화해 제작비 전액이 지원되는 반면 수어영상의 경우 임의규정으로 후보자가 비용을 지불하고 나중에 비용 보전 청구서를 통해 사용액 일부를 보전하고, 수어영상은 선거공보물 제작 시 필수사항이 아니어서 안 된다고 한다. 이에 수어영상을 제작해 무료로 제공하기로 하고 선관위로부터 후보들의 정보를 받아 각 후보들에게 수어영상 제작에 관해 안내했다. 하지만 선관위에선 무료 수어영상 제작 역시 정치자금법 위반이라고 한다”라고 개탄했다.

그러면서 “선관위에선 ‘청각장애인을 위해 수어영상이 왜 필요하냐’,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공보물 제작은 공직선거법 65조 4항에 기재돼 있는 반면 수어영상에 관한 내용은 없다’라는 답변을 해왔다. 또 ‘선거공보에 후보자의 사진과 공약 내용이 글로 제공되는데 수어영상이 꼭 필요한가’라고 묻는다”면서 “장애인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장애인의 요구에 귀기울여야 한다. 법의 사각지대를 없애는 데 더욱 노력을 해줘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또 “모든 후보들을 다 소화하긴 어렵지만 대전시장 후보들만이라도 농인에게 그들의 공약을 직접 보고 선거에 임하도록 하고 싶었던 우리의 희망은 좌절됐다. 선거방송 통역사, 투표소 내 통역사 미비 등의 문제도 그렇고, 청각장애인은 국민으로서 누려야 할 권리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대전에 8000여 명의 청각·언어장애인이 있고, 투표권을 가진 유권자는 95% 정도 된다. 그 누구도 알아주지도,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 수어영상 제작 등 장애인 차별을 막기 위한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대전시선관위 관계자는 선관위가 참정권을 박탈한다는 건 과도한 표현이다. 이 문제는 입법에 관한, 즉 법제화를 요구해야 할 사안이다. 일부 후보들은 유료로 대전농아인협회 측에 수어영상 제작을 의뢰한 상태로, 나머지 후보들과 형평성 문제가 있다. 협회에서 타 후보들에게 무료로 수어영상을 제작해 주면 기부행위로 간주돼 정치자금법에 저촉된다라는 입장을 내놓았다.

최 일 기자 choil@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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