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향하는 목표나 다짐을 외부로 표출함으로써 더욱 강력한 추진동력과 주술적인 효과를 발휘할 때가 있다. ‘슬로건의 마력’이다. 우리나라는 어딜 가나 슬로건이 많이 내걸려 있다. 국가기관 건물에도, 민간단체 내부 벽에도 상징물처럼 내걸려 있는 것이 슬로건이다. 건국 이후 격동과 혼란기를 거치면서 재건사업도 많이 했다. 국민정신을 통합하여 일사불란하게 밀고 나가는 데는 슬로건처럼 효과적인 방법도 없다. 학생들도 책상 앞에 좌우명을 곧잘 붙여 놓는다. 스스로 채찍질하기 위한 각성제 역할을 한다. 고개를 들기만 하면 바라다 보이는 이 같은 좌우명은 의지력이 약해질 때마다 힘과 용기를 주는 주술적인 효과를 발휘한다. 목표 설정에 대한 투지를 더욱 강화시키는 효과도 있다. 가훈도 그렇다. 어느 가정에 ‘화내지 말고 살자’라는 가훈이 걸려있기에 ‘참 잘 지은 가훈’이라고 했더니, “가훈대로야 살 수 있나요. 하지만 저것을 보면 화가 나다가도 감정을 조절하게 되니, 안 걸어 놓는 것보다는 낫지요.”한다. 가정에 가훈이 있다면 국가나 단체에는 지도자의 의지를 담은 슬로건이 있다. 이명박 정부의 국정지표는 ‘선진일류국가’다. 거기에는 ‘잘사는 국민, 따뜻한 사회, 강한나라’라는 목표가 구호처럼 담겨 있다. 취임 당시 야심차게 세워 놓은 목표대로 국정이 잘 운영되고 있는지는 국민과 역사가 평가할 일이지만, 지향하는 슬로건 만큼은 어느 문구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게 없다. 이에 비하면 북한은 어떤가. 반세기가 넘도록 변함없이 ‘우리 식대로 살자’다. 세계 각국과 치열하게 경쟁하고 때로는 협력을 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국제화 시대에 ‘우리 식대로’라니, 이런 슬로건에선 독재자의 ‘고집불통’이 느껴진다. 지난 21일 포르투갈과의 월드컵 경기에서 7:0이란 엄청난 스코어로 패한 것도 기실 ‘우리 식대로’만 고집한 참담한 결과는 아닌지,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대전시는 지난 민선 4기 시정구호를 ‘함께 가꾸는 대전, 함께 누리는 행복’이라고 내걸은데 이어, 7월 1일 출범하는 민선 5기에는 ‘세계로 열린 대전, 꿈을 이루는 시민’으로 정했다고 한다. ‘행복’이라든지 ‘꿈’이라든지 모두가 기대감을 갖게 하는 긍정의 낱말이 들어가 있다. 충청남도 역시 당선자의 선거공약 핵심키워드인 ‘행복’ ‘사람’ ‘중심’ ‘변화’ ‘충남’ 등 다섯 가지 단어를 중심으로 민선 5기 충남의 정체성과 철학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슬로건을 공모했다. 지난 2006년 이완구 충남도지사가 취임하면서 내걸은 도정 구호는 ‘한국 중심의 강한 충남건설’이었다. ‘한국 중심’이라는 어휘는 쉽게 이해가 가는데 ‘강한 충남’이라는 표현이 어떤 의미를 담은 것인지 다소 파격적이라는 주민도 있었다. 즉 ‘군대는 강군(强軍)’이란 표현이 어울리고, ‘경찰은 친절봉사’라는 표현이 상징적으로 받아들여지며, ‘행정공무원들에게는 복지사회 건설’이면 족하다는 것이 보편적인 상식인데, ‘강한 충남’이라고 내세웠으니 범상치 않게 느껴진 것이다. 하지만 남다른 배짱과 뚝심으로 상징되는 이완구 도지사 특유의 ‘강한 카리스마’는 도정수행 과정을 통하여 깊은 인상을 심어주었다. 특히 여당 소속 도지사이면서 정부의 세종시 수정안에 반대, 지사직까지 과감하게 내던진 것은 그의 평소 당찬 인상과 부합되는 ‘강한 면모’였다. ‘소속 정당 보다 주민의 뜻이 더 중요하다’는 의지력을 발휘할 때, 민선 단체장으로서의 면모는 더욱 빛이 난다. 슬로건이 긍정의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주민들의 공감대 형성이 중요하다. 그럴 듯하게 내세운 슬로건의 마력에 빠져 독선과 아집이 앞선다면 ‘전시효과의 함정’에 빠지게 된다. ‘전시효과’란 실질보다는 외양의 시각적 매력을 높이는 것을 뜻한다. 정치적 업적을 과시하기 위해 실질성보다 상징적 효과를 노린 정책적 사업만 펼친다면 좋은 슬로건이 한갓 장식품으로 전락할 수 있다. 주민들의 정서와 상반된 길을 가는 것도 슬로건에 반하는 일이다. 역대 시, 도지사, 군수들이 취임하면서 주민들과 약속하듯 번듯하게 걸어 놓은 슬로건이 과연 얼마만큼 주민의 뜻에 부응하면서 긍정적인 효과를 발휘했고, 실망을 안겨 준 것은 또한 무엇이었는지, 곧 출범하게 될 지방단체장들은 슬로건을 내걸기 전에 곱씹어 보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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