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리 길 나서는 길, 처자를 내맡기며, 맘놓고 갈 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온 세상이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저 맘이야"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탔던 배 꺼지는 시간, 구명대 서로 사양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할,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불의의 사형장에서, "다 죽어도 너희 세상 빛을 위해, 저만은 살려 두거라" 일러 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저 하나 있으니" 하며, 빙긋이 웃고 눈을 감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온 세상의 찬성보다도, "아니"하고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알뜰한 유혹을 물리치게 되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계족산을 오르며 한 지인이 읊은 함석헌 선생의 ‘그대 그런 사람을 가졌는가’라는 시 구절이다. 그 지인은 오래전부터 친구처럼 지내는 사이다. 그는 지난 지방선거에 처음 도전하여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대학교수직도 사회단체 회장직도 모두 버려 백수가 된 그는 주말 산에 오르며 마음을 추스르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만나는 사람들이 위로한답시고 “다음이 있지 않냐”고 말할 때는 가슴이 답답하다. 게다가 패인에 대해 해설가처럼 장황하게 늘어놓으면 할 말이 없어진다. 선거에서 직접 후보자로 뛰어보니 불판 위에 올라가 방방 뛰는 신세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후보자가 되어야만 그 심정을 알 수 있다는 얘기다. 참모도 운동원도 모두가 밑에서 불을 지피고 있고, 후보자만 선거판이 불판처럼 뜨거워서 애를 태운다는 말이다. 당해보지 않고서는 모른다. 그 분의 얘기를 들으면서 중국고사 새옹지마(塞翁之馬)가 떠올랐다. 옛날 중국 북방의 요새(要塞) 근처에 점을 잘 치는 한 노옹(老翁)이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이 노옹의 말이 오랑캐 땅으로 달아났다. 마을 사람들이 위로하자 노옹은 조금도 애석한 기색 없이 태연하게 말했다. "누가 아오? 이 일이 복이 될는지." 몇 달이 지나 그 말이 오랑캐의 준마(駿馬)를 데리고 돌아왔다. 마을 사람들이 이를 치하하자 노옹은 조금도 기쁜 기색 없이 태연하게 말했다. "누가 아오? 이 일이 화가 될는지." 그런데 어느 날, 말타기를 좋아하는 노옹 의 아들이 그 오랑캐의 준마를 타다 떨어져 다리가 부러졌다. 마을 사람들이 위로하자 노옹은 조금도 슬픈 기색 없이 태연하게 말했다. "누가 아오? 이 일 이 복이 될는지."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어느 날,오랑캐가 대거 침입해 오자 마을 장정들은 이를 맞아 싸우다가 모두 전사했다. 그러나 노옹의 아들만은 절름발이었기 때문에 무사했다고 한다. 인간세상은 복이 화가 되고 화가 복이 되는 돌고 돌아 그 변화가 무상하다는 가르침이다. 계족산에서 그 지인을 만나며 인연의 소중함을 절감했다. “지나간 어제는 역사이고, 다가올 미래는 미스테리다. 오직 오늘 이순간만이 확실한 선물이다.”는 얘기처럼 오늘 하루를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 이 순간 살아있음이 기적이요, 감지덕지한 일이다. 세상에서 많이 쓰이는 말 중의 하나가 인연(因緣)이다. 언젠가 TV에서 국토 최남단 제주도 마라도에서 강원도 벽지 분교선생을 추적해보니 네 단계를 거치니까 아는 사람이라는 실험 결과가 나왔다. 세상 사람들의 은혜로 살고 있는 것이지. 나 홀로 살아갈 수는 없다. 인연의 눈으로 보면 모두가 나를 위해 필요하고 소중한 존재다. 장수학 연구가들에 따르면‘고집 없이 잘 웃고, 베풀며 사는 사람이 오래 산다”고 한다. 긍정적으로 운명에 순응하고 다양성을 인정하는 융통성이 노화도 방지하고 인생을 즐겁게 사는 비결이라는 것이다. 고집불통이면 병에 취약하여 갖가지 병이 찾아오기 때문에 꽁한 마음을 갖지 말고 희로애락을 나눌 친구가 많아야 한다. 영국의 사회사업가 힐러리 코담은 “행복한 노후를 보내려면 일상사를 함께 할 6명 이상의 친구를 가져라”고 조언했다. 문득 오늘 “그대 그런 사람을 가졌는가”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웃으면서 대답하리라. 그런 친구를 가져서 행복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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