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평론가 / 『밸런스토피아』저자

 

4·27 남북정상회담 때의 남북한 간 화기애애했던 분위기가 사라지지 않을까 걱정이다. 남북 고위급회담을 북한이 한미 공군의 연합 ‘맥스선더’ 훈련을 비난하며 일방적으로 취소했다. 남북 고위급회담은 남북정상회담의 결과물인 ‘판문점 선언’의 이행방안 협의를 위해 열릴 예정이었다. 판문점 선언의 이행은커녕 남북관계 개선 흐름이 실종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 물론 이번 사태의 원인은 북한의 터무니없는 트집 잡기다. 김정일 체제 당시 핵 협상 과정에서 북한에게 유리한 국면으로 이끌기 위해 이런 저런 조건을 내걸고 억지를 부리며 때론 협상을 지연시키는 ‘살라미 전략’일 수도 있다.

북한이 남북 고위급회담 불가의 원인으로 든 ‘맥스선더’ 훈련은 연례적·방어적 성격이다. 특히 이 훈련은 남북정상회담 이전에 공표되고, 이미 지난 11일 시작됐다. 북한의 막무가내 행동임이 그대로 드러난다. 북한으로선 갑자기 속도가 빨라진 남북관계 개선 속도를 조절하고, 다음 달의 북미정상회담을 다분히 의식한 ‘전략’일 수도 있다. 북한이 돌출행동을 보이자 우리 정부는 비상이 걸렸다. 정부는 북미정상회담이 낙관적이라고 말하면서도 바짝 긴장하는 분위기다.

이 지점에서 궁금증이 생긴다. 정부가 갖는 극도의 초조와 긴장감은 남북문제 해결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 정부가 일련의 남북관계 개선 및 통일에 대해 나름 열성을 기울이고 있는 점은 인정한다. 그러나 정부나 주변 몇몇 전문가들만의 노력만으로 다차 방정식의 복잡한 한반도 문제를 풀 수 있다고 생각하나. 대북통일정책은 정부 여당은 물론 야당, 보수와 진보, 온 국민이 하나가 될 때 신빙성을 확보할 수 있고 폭발력을 낼 수 있다.

이번에 북한이 남북 고위급회담을 무기 연기하며 김계관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이 내뱉은 발언이 인상적이다. 그는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실명으로 거론하며 “리비아 핵포기 방식이니,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니, 핵·미사일·생화학무기의 완전 폐기니 하는 주장들을 거리낌 없이 쏟아내고 있다”고 비판했다. 북한으로서는 미국의 이런저런 요구가 어지럽다는 것이다.

우리의 역할이 막중하다. 북핵 폐기와 관련해 우리의 확고한 원칙과 로드맵은 뭔가. 이 원칙과 로드맵은 대통령과 몇몇 전문가들이 만들어내기에는 역부족이다. 야당과 더 많은 전문가들의 지식과 지혜, 철학이 모아져야 높은 완성도를 기대할 수 있다. 우리의 대북통일정책은 보수와 진보, 우파와 좌파의 구시대 틀 안에 갇혀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선거철의 지역 교량건설 공약처럼 등장했다가 사라지곤 해왔다. 한민족의 운명과 성패, 통일이 걸린 대북통일정책을 이데올로기의 잣대로 판단해 정권의 홍보나 위기돌파 수단으로 이용해온 것이다.

우리의 역대 단임 정부들은 통일방안의 근본정신을 살려 미래 지향적이고도 지속가능한 정책을 수립하는 데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대신에 ‘색깔’의 차이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남북 간 갈등과 관계 악화 등을 상대편 탓으로 돌리는 추악한 싸움을 계속해왔다. 보수든 진보든 어느 한 진영만의 힘으로는 남북한 간 평화공존을 실현하기 어렵다(최장집 교수). 남북관계를 정치적·파당적 목적을 위한 방편으로 이용하지 말아야 한다(남북관계발전법 2조). 서독에서 오랜 기간 이어진 ‘신동방정책’은 동독 내부의 변화를 견인하고 통일의 기초가 되었다. 1969년 진보 연립정부의 빌리 브란트 총리가 시동을 건 신동방정책은 꾸준히 계속돼 동서독 기본조약의 바탕이 됐다. 1982년 보수 연립정부의 헬무트 콜 총리 또한 기존정책을 그대로 밀고 나감으로써 독일통일의 토대를 마련했다.

우리가 하나의 대북통일정책을 갖고, 국민이 하나가 된다면 무서울 게 없다. 북한이 제 아무리 핵과 미사일로 위협한다고 해도 우리의 대북통일정책의 원칙과 방향에 따라 상황에 맞게 대처하면 될 일이다. 북한의 움직임에 일희일비하거나 동요될 이유가 없게 된다. 주변 강대국이나 세계를 향한 통일외교도 마찬가지다. 누가 봐도 당위성을 지니는 통일정책에 따라 우리 주도의 통일외교를 펼칠 수 있고, 의미 있는 성과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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