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균 대전효문화진흥원 효문화연구사업단 단장

 

대전은 동쪽으로 식장산, 서쪽으로 갑하산, 남쪽으로 보문산, 북쪽으로 계족산이 병풍처럼 둘러싸여 있고, 그 안쪽으로 대전천, 유등천, 갑천이 지형따라 어우러지는 분지형 공간이다. 물이 음(陰)이고 산이 양(陽)이니, 음양의 절묘한 조화를 이룬 지세가 대전인 것이다. 그렇다고 여기서 대전의 풍수를 논하려는 것은 아니다. 이런 대전의 산하를 끼고 삶의 터전이 만들어졌고, 거기에 유수한 삶의 애환을 담은 효문화가 담겼음을 말하고자 함이다.

대전의 전승설화 대부분은 산과 하천을 끼고 나왔다. 또 그 상당수가 효문화와 관련되어 있다. 보문산과 유등천 곳곳에도 효관련 설화들이 즐비하다. 중구 침산동 아들바위 전설과 안영동 미역바위 전설도 그 가운데 하나다. 전국적으로 아들 바위는 셀 수 없이 많다. 무후(無後), 곧 후사가 없는 것을 가장 큰 불효로 여긴 맹자의 영향이 아닐까 생각한다. 아들로 대를 잇는 것을 효라 생각했던 전통사회의 흔적이 아들바위 전설을 낳았다면, 미역바위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아들 낳은 산모에게 줄 미역을 따서 말리던 곳을 미역바위라 하였기 때문이다.

딸만 있고 아들이 없던 사냥꾼 부부가 살고 있었다. 아내는 남편의 짐승 살생이 아들을 낳지 못하게 하는 원인이라 생각하고는 남편에게 사냥을 그만두게 했다. 그러자 이들 부부에게 곧바로 아들이 생겼다. 남편은 날마다 미역바위로 가서 미역을 따다가 아내와 아기에게 주었다. 주변 바다가 없음에도 마치 유등천변이 바다인 것처럼 착각하게 만드는 설화이다. 살생을 금하는 불교적 세계관과 아들을 선호하는 유교적 가치관이 함께 어우러진 효관련 전설이다.

보문산에 내려오는 전승설화도 하나 소개해 보자. 가난하게 사는 나무꾼이 있었다. 나무꾼은 어머니를 지극 정성으로 모시는 효자였다. 어느 날 나무를 팔러 장으로 가는데 말라가던 옹달샘에 물고기 한 마리가 죽어가고 있었다. 이를 측은하게 여긴 나무꾼은 죽어가던 물고기를 물이 있는 다른 곳으로 옮겨주었다. 다시 길을 가는데 조금 전 말라가던 웅덩이에 보물주머니 하나가 놓여 있었다. 은혜를 갚는 주머니였다. 나무꾼이 집으로 돌아와 주머니에 엽전 두 냥을 넣자 엽전이 쏟아져 나왔다. 무엇이든 넣으면 쏟아지는 보물주머니였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효자 나무꾼은 큰 부자가 되었다.

마침 놀부 형이 이 소식을 듣고는 찾아와 보물주머니를 보여 달라고 했다. 착한 동생은 의심 없이 보물주머니를 보여주었다. 놀부 형은 보물주머니를 보자마자 뺏어 들고는 곧바로 도망갔다. 동생이 달려가 보물주머니를 놓고 형과 실랑이를 하는 사이에 그만 주머니가 땅에 떨어지면서 흙이 들어갔다. 이후로 보물주머니에서는 끊임없이 흙이 나왔고, 그것이 쌓여서 지금의 보문산(원래는 보물산)이 되었다는 얘기이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권선징악형(勸善懲惡形) ‘흥부와 놀부’ 이야기와는 약간은 그 결을 달리하는 내용이다.

이와 유사한 보문산 설화도 있다. 삼형제를 두고 숯을 굽는 노인이 살고 있었다. 어느 해 심한 가뭄이 들면서 논이 말라갔고 올챙이들도 죽어갔다. 노인은 죽어가던 올챙이를 물이 있는 다른 웅덩이로 옮겨주었다. 얼마 뒤 웅덩이에서 자란 개구리가 이상한 그릇을 가져다 놓고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 이상한 그릇은 쌀을 넣으면 쌀이 쏟아졌고, 엽전을 넣으면 엽전이 쏟아지는 보물그릇이었다. 덕분에 마음씨 착한 노인은 부자가 되었다. 그런데 욕심 많은 형제들이 보물그릇을 서로 차지하려고 다투었다. 노인은 형제 간의 불화를 걱정하며 그 그릇을 보문산에 몰래 묻었다. 이후로 보물그릇이 묻혔다 해서 보물산이라 했다가 나중에 보문산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생명을 아끼는 자연친화적 내용과 형제간의 화목을 무엇보다 우선하는 가족주의가 자연스레 반영된 설화이다.

이렇듯 보문산 설화에는 효와 생명, 가족의 화목을 소중히 여기는 효문화이야기가 담겼다. 보문산 아니고서도 대전을 둘러싸고 있는 대부분의 산과 하천에 이런 다양한 효문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대전효문화진흥원에서는 이같은 대전의 효문화 전설을 하나하나 엮어서 자료집을 내고 또 이를 시민들의 효문화 체험공간으로 만들어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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