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태자 박사

중세 합스부르크가의 결혼식 얘기들도 많이 남아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대리결혼이다. 이름 그대로 신부와 결혼을 하는데 신랑이 직접 오지 않고 신랑이나 집안에서 뽑은 대리가, 아니면 신부의 오빠나 동생들이 대리 신랑으로 나타나 결혼식을 올리고 나서, 후에 신부가 신랑의 나라에 가서 다시 결혼을 올리는 제도이다.

이런 대리 결혼일지라도 첫날밤은 치른다. 하지만 진짜는 아니고 그냥 격식이다. 신부와 대리 신랑이 진짜 신혼부부처럼 침대에 눕는 것은 같다. 하지만 여기서의 격식을 눈여겨보자. 바로 대리 신랑이 자기의 장딴지를 걷어 신부의 장딴지에 대는 의식이다. 이것이 공식적인 첫날밤으로 간주되었고, 이것을 통해서 이 혼인은 법적인 효력을 가졌다고 한다. 물론 다른 많은 얘기들도 있지만 오늘은 합스부르크가의 후손에 속하는 시시 얘기에만 국한하기로 하자.

만약 우리나라에서 이런 관계가 법적으로 허용된다면? 사돈과 사돈끼리 격식을 무엇보다도 중시하는 우리네에게는, 사촌끼리의 사돈관계는 격식자체부터가 좀 이상해 질 것 같다.

특히 말투부터다. 서양인들이 그냥 ‘아저씨’ ‘아줌마’로 그칠 수 있는 칭호에 비해, 우리는 얼마나 많은 칭호가 있는가? 이모, 고모, 숙모, 백모, 숙부, 삼촌 등등 말이다. 여기다 또 높낮이를 철저하게 따지는 언어 구조다. 독일 같은 경우는 가족끼리 친척끼리는 무조건 다 말을 놓는다. 말하자면 만약에 시부/시모의 이름이 철수/영희일 경우, 며느리가 철수야!/영희야!로 이름을 부르는 사회다. 그 반대로 사위도 물론 장인 장모의 이름이 영식/영숙인 경우 영식아! 영숙아! 라고 부른다. 언어에서부터 이렇게 격식이 없다 보니 사돈 관계가 우리보다는 확실히 더 쉬울 것이다

각설하고 다시 본 얘기로 돌아와 1854년 4월 24일 빈에서 70명의 주교들이 모인 자리에서 추기경 요셉 오트마르에 주례로 이 둘의 결혼식이 거행되었다. 물론 이때는 합스부르크가의 전유물이었던 대리결혼이 아니었고, 진짜 신랑신부가 올린 결혼식이었다.

딸의 결혼 지참금으로 공작부부는 5만 굴덴과 옷과 보석을 선물했다. 오늘날의 가치로 한 50억쯤 아니었을까? 중세 때부터 여자가 시집갈 때 지참금이 상당히 중요시됐던 문화에 관계지어보면 말이다. (다음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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