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형직 을지대 교목

 

주형직 을지대 교목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유수 기업 대표들을 대상으로 성공요인을 질문한 적이 있었다. 그러자 응답자의 93%가 개인의 능력이나 기회, 운이 아니라 ‘매너’를 성공의 가장 큰 요인으로 꼽았다다. 독일의 사회학자 노르베르트 엘리아스(Norbert Elias)의 저서 ‘문명화 과정’에서도 인간이 문명화되는 과정을 ‘매너의 역사’라고 주장하고 있다.

단순히 예의를 가리키는 말로만 알고 있는 매너가 성공요인이 되고 어떻게 문명화되는 역사의 과정으로 소개되고 있는지 궁금하다. 매너라는 말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유사한 말인 에티켓과는 차이가 있다. 에티켓은 도덕적인 행동예법을 말하며 매너는 그것을 행동하는 방식이나 태도를 말한다. 이를테면 노약자석에 앉지 않는 건 에티켓이지만 앉은 자리에서 노약자에게 양보하는 행위는 매너다.

영국의 다이애너 황태자비(妃)가 생전 한국을 방문한 일이 있었다. 방한 중에 다이애너는 복지시설 견학을 원했고 한 양로원 시설을 방문하게 됐다. 시설 견학을 마친 후 할머니들의 평소식단으로 함께 식사를 하게 됐다. 서툰 젓가락질로 음식을 먹다보니 입 주변에 음식물이 묻었고 이를 본 할머니 한분이 두루마리 휴지를 둘둘 말아 건네줬다. 다이애너는 처음엔 당황한 듯 했지만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며 미소를 잃지 않고 휴지를 사용했다.

화장지와 두루마리 휴지를 철저히 구분해서 사용하는 서양문화에 비춰보면 화장실에서나 사용하는 휴지를 건넸으니 엄청난 결례를 한 것이다. 할머니가 휴지를 건넨 건 에티켓있는 행동이 아니었지만 황태자비를 위하는 마음은 매너였던 것이다. 다이애너 역시 두루마리 휴지를 사용한 건 에티켓에 어긋난 행동이지만 할머니가 민망할 것을 배려해 거리낌없이 사용한 건 훌륭한 매너를 보여준 것이다.

사람은 늘 관계 속에 존재한다. 행복은 관계 속에서 경험할 수 있고 행복을 위협하는 것도 관계 속에서만 경험할 수 있다. 사랑을 기초로 하는 관계라면 허다한 잘못과 실수도 이해되고 용서가 된다. 대표적으로 부모와 자녀의 관계가 그렇다. 자녀의 실수와 잘못 때문에 부모와 자녀관계가 깨지는 경우는 많지 않다. 반면 이해를 토대로 하는 관계라면 작은 손익에도 억측과 오해, 불필요한 갈등이 생겨난다. 이 때문에 관계는 늘 어렵고 부담스럽게 느껴진다.

에티켓은 바로 이런 필요에 의해서 생겨나게 됐다. 사람간의 관계에 기본적 규칙을 정함으로써 관계에서 빚어질 수 있는 갈등이나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에티켓은 관계의 갈등이나 오해를 예방하기도 하지만 보다 친밀한 관계를 막아서기도 한다. 지나치게 예의를 갖추면 관계발전이 더디게 되는 게 그런 경우다. 이 때 마음의 문을 여는 열쇠가 매너다. 매너는 상호 관계에서 마음의 문을 열게 한다. 그만큼 좋은 매너는 공감과 신뢰를 주고 때때로 감동을 준다.

프랑스에서 “삶을 멋지고 성공적으로 영위할 줄 아는 방법”으로 매너를 정의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무엇 때문에 세계적으로 성공한 기업가들이 능력이나 기회보다 매너를 성공의 요인으로 꼽았는지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문명화 과정 역시 인간이 매너를 세심하게 다듬어가는 과정으로 이해한 것이다. 문명이란 흩어진 인간의 지혜를 조직화하는 과정에서 나오기에 본능적 충동을 방치하면 혼란이지만 배려와 사랑을 토대로 질서 있게 사용하면 에너지가 되기 때문이다.

우리시대 도덕과 질서, 법규는 일종의 강제력이 있는 에티켓이다. 강제력이 있다는 말은 그것을 지키지 않을 때 그에 따른 대가가 주어진다는 뜻이다. 사회적 비난이나 법적 구속력을 말한다. 그러나 단지 사회적 비난이나 법적 구속력이 두려워 도덕과 질서, 법을 지키는 사회라면 막힌 관계를 풀어갈 해법은 없다.

북미정상회담을 앞둔 다자외교는 꼬이고 지방선거를 앞둔 여야관계 역시 막혀있다. 세대갈등과 빈부갈등, 계급갈등 또한 풀기 어려운 관계의 실타래로 엉켜있어 심히 걱정스럽다. 다른 어느 때보다 신뢰와 공감, 감동이 있는 매너가 요구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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