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시간 반 긴 수술 끝내고도 … 다음 환자 생각뿐인 남자

어제도 15시간이라는 장시간 수술을 마친 그였다. 긴 수술을 마친 후, 밤 8시 반이 넘어서야 첫 끼를 먹은 그는 무거운 몸을 이끌고 이튿날 오전 진료까지 끝냈다. 다른 병원에서 마다하는 환자들도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메스를 드는 그에게 장시간에 걸친 대수술은 심심찮게 찾아오는 일상이었다.

대전유성선병원 부인암센터에서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는 최석철 산부인과 박사의 얘기다. 지난 16일 낮에 만난 최 박사는 오늘도 한 브랜드 빵집에서 파는 샌드위치로 한 끼를 때웠다고 기분 좋은 투정을 하며 또 다른 수술 에피소드로 말문을 열었다.

최 박사는 “얼마 전 19시간 반이 걸린 수술을 마치고 수술기록을 작성하려는데, 병원 시스템 상 수술시간 입력이 1085분까지밖에 안 됐다. 1085분, 18시간 5분이 최장시간이어서 내가 한 수술시간을 다 입력할 수가 없었다”며 “장기 유착이 심한 환자들은 수술을 할 조건으로 만드는 것만 해도 오랜 시간이 걸리는데 대부분 의사들은 장기유착이 돼 있으면 수술을 시작하지도 않고 닫는 경우가 많다. 이번 환자가 이런 경우였다”고 설명했다. 이어 “자궁에서 간, 횡경막, 복막에도 전이가 됐다”며 “이를 다 떼어내고 워낙 복막에 많이 퍼져있어서 항암제를 투여를 한 후 지켜보고 있는 중인데 환자가 잘 견뎌주길 기다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번 경우처럼 최 박사에겐 다른 병원에서 시한부 선고를 받고 찾아온 환자가 많다. 지난해에는 2005년부터 난소암 3기 진단을 받은 이후 9번이나 난소암이 재발한 50대 여성 환자의 10번째 수술까지 진행하는 결단을 보여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산부인과를 비롯해 외과, 혈관외과, 비뇨기과 등이 참여한 가운데 신장정맥 임파선, 위 일부, 소장 8군데, 우측 골반벽, 방광벽 등에 전이된 암을 12시간에 거쳐 제거하는 대수술이었다.

그는 “수술을 할 땐 모르겠는데 수술이 끝나고 나면 목하고 허리가 끊어질 것처럼 아프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다하지 않고 어려운 수술을 하는 이유는 암을 다 제거했을 때 얻는 희열이 있다. 어떻게 보면 그걸로 사는 거다”라고 덤덤히 말했다. 그러나 모든 시도의 결과물이 다 좋을 수만은 없는 법. 그는 “결과가 다 좋으면 더할 나위 없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하지만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고 좋은 결과를 기다리는 것, 진인사대천명같은 삶이 내 운명인것 같다”고 말했다.

최 박사가 ‘최선’을 강조하는 데는 그의 남다른 신념과 연결된다. 그는 “수술 역시 사람이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15시간 넘는 장시간 수술을 해도 의사들은 돈 십 원 이상 더 받지 않는다. 생명을 다루는 일이기 때문에 쉽게 포기하지 않는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배움에 대한 열정까지 더한 의지를 보인 의사다. 지난 2004년 원자력병원에 근무 중이던 최 박사는 독일 라이프치히 대학의 헤켈(Hockel)교수를 찾아가 리어(LEER)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확대골반절제술 수술법을 배웠다. 리어 수술법은 골반벽까지 전이된 암 환자의 수술에 최초로 시도된 방법이다. 골반벽 전이암 환자의 경우, 혈관조직이 특히 섬세하기 때문에 당시 국내에서는 골반벽까지 암세포가 전이되면 수술이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다. 배움을 위해 어렵게 연수를 선택했지만 배우기도 쉽지 않았다.

최 박사는 “헤켈 교수의 수술 장면을 보고 싶어 어시스트(보조)를 요청했지만 독일 의사 면허가 없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며 “그러나 이 수술법을 배우고 싶어 긴 막대기 끝에 6㎜ 카메라를 매단 채 여분의 배터리를 들고 사다리를 타고 올라간 뒤 헤켈 교수의 수술 장면을 녹화했다. 팔이 아파서 자세를 몇 번이고 바꿔가며 한 수술 장면을 지금도 돌려보고 있다”고 소회했다.

그의 이런 의지는 의사출신 아버지를 고스란히 닮았다. 체력이 허락하는 한 메스를 들고 수술을 하겠다는 최 박사의 부친 역시 88세의 나이임에도 현재까지 진료를 하면서 새로운 치료법을 공부하는 등 열정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최 박사는 “일종의 성향인 것 같은데 아버지도 현재 88세 연세로 요양병원에서 환자를 돌봐주고 계신다”며 “작년에 아버지께서 임상병리과 책을 사서 보내달라고 하셔서 이유를 물어보니 환자들이 검사결과를 물어볼 때 말문이 막혀 공부를 해야겠다고 하셨다. 그 연세에 그 노의사가 최신판을 사서 공부를 하신다는 말씀을 듣고 제 스스로 반성도 하게 됐다”고 털어놨다.

그는 앞으로도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 의사가 될 생각이다. 매너리즘에 빠질 수도 있고, 아무리 노력해도 되지 않는 부분도 물론 있겠지만 할 수 있는 한 환자의 생명에 무게를 두는 책임감 있는 의사말이다.

최 박사는 “현실에 안주하면 대부분 약을 쓰는데 그러면 무병생존율이 3개월 증가한다고 한다.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라며 “약물로 3개월 더 살고 싶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아닐 것 같다. 인간답지 않은 정상적인 삶을 포기하고 영유하는 건 의미가 없다고 본다. 모두 제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라고 피력했다. 마지막까지 그는 “병원을 갈 때 병원 간판을 보고 가지말고, 적어도 의사의 스승이 누구인지, 그 의사를 면담했을 때 그가 정말 환자를 살리려는 의지가 있는 지 정도를 가늠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최 박사는 동국대병원 교수와 원자력병원 자궁암센터 소장 등을 역임했으며, 독일 라이프치히대학(University of Leipzig)과 미국 남플로리다대학 리 모핏(H.Lee Moffitt) 암연구센터 교환교수로 연구 활동을 하며 실력을 인정받았다. 유성선병원에는 지난 2014년 부인암센터 개소에 맞춰 영입됐다.

강선영 기자 kkang@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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