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 연합뉴스

“관객의 지적 능력을 기대하는 시적(詩的)이고 미스터리한 영화”

지난 16일 제71회 칸영화제에서 첫 공개된 이창동 감독의 신작 ‘버닝’에 대한 티에리 프레모 칸영화제 집행위원장의 찬사다.

‘버닝’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소설 ‘헛간을 태우다’를 모티브로 삼고 있다. 30여년 전에 발표된 고작 32페이지 분량의 단편을 이창동 감독은 러닝타임 148분의 영화로 만들어냈다. 원작의 ‘나’, ‘그녀’, ‘그’가 영화에서는 종수, 해미, 벤으로 설정됐고 ‘나’를 중심으로 한 전개와 캐릭터들의 기본설정 등 많은 부분에서 원작의 결을 함께 한다.

그렇다면 ‘버닝’ 외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이번주에는 영화 판권을 팔지 않기로 유명한 하루키가 허락한, 그렇게 해서 영화로 재탄생한 그의 작품 2편을 살펴볼까 한다.

 

'하루키 신드롬'에 불을 붙인 작품인 '상실의 시대'를 영화화했지만...

◐상실의 시대(원제:노르웨이의 숲)

개봉│2011. 4. 21

감독│트란 안 훙

출연│마츠야마 켄이치, 카쿠치 린코, 미즈하라 키코

 

17살. 나, ‘와타나베’(마츠야마 켄이치)는 절친 ‘기즈키’, 그의 연인 ‘나오코’(키쿠치 린코)와 함께 항상 셋이 어울렸다. ‘기즈키’가 홀연히 죽음을 택하고 남겨진 나는 그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19살. 도쿄의 대학생이 된 나를 ‘나오코’가 찾아온다. 매주 함께 산책을 하면서 서로 가까워지게 되고, ‘나오코’의 스무 살 생일날 우린 사랑을 나누게 된다. 그 후로 한동안 연락이 없던 ‘나오코’에게 현재 요양원에 있다는 편지를 받게 되고, 그 곳을 찾아가면서 그녀에 대한 내 사랑이 조금씩 확고해져 가는 것만 같다.

20살. 같은 대학에 다니는 ‘미도리’(미즈하라 키코)가 내 삶에 들어온다. 톡톡 튀는 성격의 그녀에게서 ‘나오코’와는 다른 매력이 느껴진다. ‘나오코’의 편지가 점점 뜸해지던 어느 날, ‘나오코’의 병세가 더욱 심해졌다는 소식을 듣게 되는데…

1987년 일본에서 출간돼 ‘하루키 신드롬’에 불을 붙인 작품으로 왕가위를 비롯한 세계의 유명감독들이 영화화를 원했지만 선택을 받은 이는 ‘그린 파파야 향기’, ‘씨클로’의 트란 안 훙 감독. 촬영감독은 ‘화양연화’의 리판빙, 음악은 영국 록밴드 ‘라디오헤드’의 기타리스트 조니 그린우드가 맡았다.

풍부한 영상미와 인간의 소소한 부분을 조용히, 그리고 따뜻하게 그리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는 트란 안 훙 감독과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영상미를 선사해 온 리판빙 촬영감독이 참여한 만큼 영상미 부분에서는 대부분 호의적이었지만 결정적으로 원작을 읽지 않았다면 내용 이해가 힘들다는 평가가 많았다. 그 탓에 일본에서는 13만명, 국내에서도 2만명 동원에 그치며 흥행에 참패했고 평단과 관객들도 원작의 10%도 따라가지 못했다는 평이 넘쳐났다.

 

19세에 찍은 누드집, 스모선수 다카노 하나와의 약혼과 파혼 등으로 ‘일본 최고의 스캔들 메이커'에서 '일본 최고의 배우’로 거듭난 미야자와 리에가 ‘치수’를 제외하곤 전혀 다른 두 여성의 1인 2역을 완벽하게 연기했다.

◐토니 타키타니

개봉│2005. 9. 22

감독│이치카와 준

출연│미야자와 리에, 오가타 이세이, 유미 엔도, 니시지마 히데토시

 

외롭게 자란 토니는 특이한 이름 때문에 놀림감이 되기 일쑤였고, 결국 혼자가 편하다고 느낀다. 정교한 일러스트레이터로서 확실한 재능을 보인 그는 어느 날 아담한 체구에 단정하고 아름다운 미소를 지닌 에이코란 여성에게 불현듯 마음을 뺏겨 결혼에까지 이른다. 그의 삶은 변화했고, 난생 처음으로 생의 떨림을 맛보았으며 '다시 외로워진다는 것'을 두려워하게 되었다. 그러나 쇼핑 중독이었던 에이코는 결혼 후에도 충동을 자제하지 못하고, 어쩌다 토니는 다시 혼자가 된 토니는 멍하니 앉아 아내가 남긴 옷장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너무도 아름다운 옷들이 마치 그녀의 유령을 보는 듯 하여 괴로움에 빠진다. 토니는 결국 아내와 완벽히 일치하는 치수를 가진 여성을 모집한다는 신문 광고를 내게 되고 그의 광고를 보고 한 여인이 찾아오는데…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집 ‘렉싱턴의 유령’에 수록된 동명의 단편소설을 최초로 영화화한 작품으로 CF 감독 출신인 이치카와 준 감독이 영상으로 옮겼다. 8년 동안이나 이 작품의 영화화를 구상한 이치카와 준 감독은 소설 문장을 3인칭 내레이션으로 풀어간다거나, 여백과 프린트 탈색 등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에서 영감을 얻은 독특한 영화적 기법을 이용해 낯선 질감의 영화로 탄생시켜 하루키 원작을 가장 잘 살렸다는 평을 이끌어냈다. 그 결과 2004년 스위스에서 열린 제57회 로카르노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상, 국제 비평가 연맹상, 영 심사위원상 등 3개의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1991년 19세의 나이로 누드집 ‘산타페’ 내 100만부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며 한국에서까지 화제가 됐던 미야자와 리에는 ‘치수’를 제외하곤 전혀 다른 두 여성의 1인 2역을 완벽하게 연기했고 ‘남한산성’, ‘레버넌트:죽음에서 돌아온 자’, ‘마지막 황제’ 등의 영화에서 음악을 담당했던 일본 출신의 세계적 뮤지션 사카모토 유이치의 OST는 영화의 우울한 분위기를 극대화시켰다.  <사진=네이버영화·예스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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