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산 땅을 팔았다

금강일보는 베이비부머 세대의 효와 사랑 이야기를 담은 임석원의 자전적 에세이 나는 내 아내가 너무 좋다를 인터넷판을 통해 연재합니다. 본보 201789일자 10면 보도

1955년부터 1963년 사이에 출생한 우리나라 베이비붐 세대는 한국전쟁 이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격변의 시대를 관통하며 살아온 세대로, 임석원의 에세이는 그 시대에 태어나 하고 싶은 것, 되고 싶은 것도 많았겠지만 자신을 위해서는 한 가지도 해 보지 못한 채 오직 가족만을 위해 굳세게 살아온 한 남자의 자전적 이야기이자, 곁에서 묵묵히 좋은 동반자가 되어 준 아내에 대한 절절한 고마움을 전하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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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 땅을 팔았다

10여 년 전 어머니가 간암으로 투병하던 때 병원비 마련을 위하여 금산에 사둔 땅, 내 이름으로 되어 있는 땅과 어머니 이름으로 되어 있는 땅, 둘 다 팔려고 내어 놓았다. 어느 땅이든지 먼저 팔리는 땅을 팔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밭이 한 필지로 넓어 사용용도가 좋은 어머니 이름으로 되어 있는 땅이 팔렸다. 그 당시 세법에 따라서 아버지 어머니가 금산에서 농사를 지었기 때문인지 세금은 거의 내지 않았다. 그 돈은 어머니 살아계실 때 병원비와 생활비로 쓰셨다. 나머지는 어머니가 돌아가시고는 아버지가 관리하시며 쓰셨다.

2015년 말 내 이름으로 되어 있는 땅을 어렵게 팔았다. 농지와 임야는 사려는 사람이 있을 때나 팔린다. 덩치가 큰 물건은 더욱이 아무리 팔고 싶어도 살 사람이 없으면 팔 수 없다. 서울에 있는 아파트처럼 가격을 좀 싸게 내놓는다고 팔리는 게 아니다. 현지에 있는 선배 어른에게 적극 원매자를 물색토록 하여 원하는 만큼이야 받지 못하였지만 그런대로 적당한 금액에 팔았다. 10년 전 어머니 이름으로 되어 있던 땅을 팔았을 때는 세금을 거의 내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요즘 세법에 따라 매매금액의 25%가 넘는 금액을 세금으로 내야 했다.

2016년 봄 아버지 돌아가시기 전 나는 막내 동생이 살고 싶어 하는 연세대 앞 연희동에 제대로 된 집을 얻어 주었다. 그리고 근 15년 전 아버지 어머니 모시려고 대전 둔산동 아파트를 사던 때 쾌히 1억 원을 빌려주신 선배에게 이자 좀 붙여서 빚을 갚았다. IMF 외환위기 때 대전 가양동 집을 팔고 아버지 어머니가 성남동 6차선 도로변 상가주택 2층으로 이사 가실 때 완벽하게 수리를 해드렸는데도 1년도 못 사셨다. 이사 전 뇌수막하 출혈로 수술을 받으신 어머니가 차가 많이 다녀 집이 울리고 시끄러워 심란하여 못 살겠다고 하였다. 그래서 큰 아들인 나는 그 선배에게 내 퇴직금을 담보로(?) 빚을 내서 둘째 동생네 집에서 가까운 둔산동 아파트를 사서 아버지 어머니를 이사하게 하고 조용한 환경에서 사시도록 했었다.

금산 땅 팔고 세금 왕창 뜯기고 동생 집 얻어주고 선배한테 빚 갚고 남은 돈은 모두 아내에게 주었다. 신혼 때 내가 싱가포르로 나가고 2년 동안 남편도 없는 시집에서 고생시킨 보상을 금산 땅 팔아서 얼마라도 하게 되었으니 정말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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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임석원은...

1956년 지리산 시골마을에서 태어났다. 대전고와 한남대를 졸업한 후 1980S그룹 S건설에 입사해 23년을 근무하면서 사우디·싱가포르·인도네시아 등 8년간 생활했다. 2003년 영국 유통회사 B&Q 구매이사, 2004년 경남 S건설 서울사무소장으로 일했다. 2009H그룹 H건설에 입사해 리비아에서 자재·장비 구매업무를, 2011E그룹 E건설에 입사해 중국과 동남아 대외구매를 담당했고, 2013년에는 전북 J건설 소속으로 사우디에서 근무했다. 지금은 34년 직장생활을 마감하고 미군부대에서 계약직으로 근무하면서 여러 분야의 책을 읽고 토론하는 분당 판교지역 독서모임에 참여하고 있다. 인생 후반기엔 책 읽고 여행하고 글 쓰는 삶을 계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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