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테오라 같은 곳은 메테오라에만 있다

하늘에 속한 도시, 메테오라(Meteora)

아름답기보다 경외감을 느끼게 하는 그 곳은 Μετέωρα’, ‘매달린 바위’, ‘공중에 매달린’, ‘하늘 바로 아래라는 뜻을 담고 있다. 나는 말이 멈춰버린 이곳에서 셔터를 눌렀다. ‘아름답다는 말이 가치를 잃어버린 땅이었다. 눈물이 나서 자꾸만 먼 하늘을 쳐다봤다.

공중위의 도시 메테오라는 다시 봐도 말을 이어갈 수 없다. 적고 지우고 또 적다가 그만둔다. 그 감동은 메테오라 스스로에게 맡겨두는 게 맞는 것 같았다. 여기엔 공기가 없는가보다. 맨눈으로도 지구 끝까지 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맑고 맑은 하늘은 봤어도 무균실 같은 하늘은 메테오라가 처음이었다.

이스탄불과 가까운 아토스 산(Mount Athos)엔 속세를 피하는 수도자들이 모여들었다. 짐승도, 여자도 들어올 수 없는 곳이었다. 그러나 오스만투르크(Osman Türk)에 밀려 신앙은 유지 할 수 없었다. 그렇게 더 깊숙이 숨어들 수밖에 없었다. 공중도시는 사암 바위가 기둥처럼 솟아있는 곳이었다. 그 산 꼭대기에 줄을 타고 올라가 다시는 내려오지 않을 요량으로 불가능한 수도원을 지었다. 마법 같은 건물이고 기적의 결과였다.

성 스테파노(St. Stefano) 수도원이 멀리 보인다. 그나마 걸어 들어갈 수 있는 친절한 수도원이었다. 천국이 이런 느낌일까.

아토스(Athos) 수도원

결코 갈수 없는 영혼의 산 이었다. 은둔자의 수도원은 지금도 암컷짐승과 여자는 받아들이지 않는 금녀의 공간이다. 바다로 튀어나온 만()이지만 2000m가 넘는 산들이 빽빽하게 막고 있어 사람들은 육지보다 바다로 가는 방법을 택했단다.

숨어 든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기독교의 지엄한 교리를 간직하기 위해서였을까, 속세를 떠나 금욕의 땅에서 신학을 연구한 것일까.

아니라고 말할 순 없다. 1453년 비잔틴 멸망 후 이탈리아에서 르네상스가 일어나자 이곳의 진리가 함께 들어왔다. 풀어내기 어려운 말이지만 기독교는 교부철학이라 해서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철학을 기반으로 기독교적 종교관을 설명한다. 이치에 맞는 성서가 등장하기까지 그리스 철학이 필요해서다. 갖은 핍박이 이어졌다. 이교도의 학문을 공부하다가 들키게 된 이들은 이단으로 낙인찍혔다. 그러나 기독교 교리의 치밀함을 위해선 결코 건너 뛸 수 없는 단계였다. 긴 고뇌와 긴 사투가 필요한 시간이 필요했다. 그렇게 그들은 성경 이전의 지식을 연구하고 복원했다. 고전을 연구했다고 왜 이단이라는 굴레를 쓴 것일까.

그리스 철학은 어느 순간 단절됐고 그 후속세대에서 연구는 이슬람 학자들이 이어받았다. 희랍어로 불리던 그리스어로 적혀진 원전은 다시 아랍어로 쓰여 졌다. 사람들은 아랍어를 공부해야했다. 이슬람과 기독교의 긴 앙숙관계를 알고 있다면 바로 이해할 수 있지만 사실 아랍어로 무엇이 적혀있는가는 중요하지 않았다. 아랍어에게 그 때는 무조건 나쁜 시절이었다. 지금도 히잡(Hijab)을 쓰고 미국 공항 통과하는 게 쉽지 않다는데 말해 뭐하겠는가. 그러나 서양에서 단절된 철학서는 아랍어로 번역돼 있었고 그 원전은 반드시 열어야 했다.

어려운 말이었다. 금욕의 공간이 아니라 그보다 더 귀한 목숨을 구할 공간이 필요했다. 그 시절을 견디고 나서야 아리스토텔레스 철학 기반 위에 기독교를 앉혀둘 수 있었다.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신학대전은 그 결과물이었다. 이성이 먼저일까, 신앙이 먼저일까.

안타깝게도 아리스토텔레스는 절대적 신을 인정하지 않았다. 현실에서 행복한 것을 찾는 게 목표였고 내세는 없었다. 그럼 예수님의 희생과 대신 죄를 감당하신 게 맞을까. 위험하다, 그만 쓴다.

그림 같은 산중도시 풍경

메테오라 같은 곳은 메테오라에만 있다’. 내말이 아니다. 여행자들의 공통적인 말이다.

직선거리는 멀지 않으나 산을 넘고 돌아 들어가려면 10시간은 족히 들어야만 한다. 여기에 눈이 오면 시간은 곱절로 늘어난다.

하늘이 눈부시게 맑은 날이면 그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죄스러웠다. 긴 핀도스 산맥(Pindus Mountains)이 끝나가는 곳에 수도꼭지 잠근 후 떨어지는 물처럼 수십 개의 솟아오른 바위산이 똑 똑 떨어져있다. 바위산 사이 작은 공간이 칼람바카(Kalambaka)’라고 하는 마을이다. 메테오라에 오르는 여행자들의 베이스캠프 같은 곳이었다.

병풍이라 부르기에도 거대한 바위기둥 꼭대기에 수도원이 생겨났고 14세기엔 25개 정도가 있었다하니 꼭대기마다 하나씩 있었던 모양이다. 그마저도 하나하나 사라지고 이제 6개만 남았다. 많은 사람들이 찾아들면서 수도사들이 떠나가고 있어서다.

복이 많아 6개의 수도원을 차례로 올라서니 신기하게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고민 속에 살아가는 내겐 도리어 신성한 순간이 됐다.

글·사진=김기옥 님(협동조합 사유담(史遊談))

정리=이준섭 기자 ljs@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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