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훈(작가, 한국문인협회 이사)

 

5월은 어린이에게는 희망의 계절, 청소년에게는 자신의 진로를 생각하면서 바른 가치관 정립을 위해 깊이 사유하는 계절이며, 가족 구성원 간에 서로를 소중히 생각하며 사랑을 확인하는 계절이기도 하다. 맞다. 우리는 맑은 햇살과 눈부신 녹색의 물결이 온 세상을 희망으로 가득하게 하는 신록을 바라보며, 그 어느 때보다 가족을 소중하게 생각해왔던 전통 속에서 5월을 향유해왔다. 그런데 이 가정의 달, 5월이 즐길 새도 없이 어느새 휭 하니 지나갔다. 아니, 걱정스러워 5월의 싱그러움을 느낄 수가 없었다.

현재 남북을 둘러싼 상황이 긴박하고 숨가쁘기 때문이다. 효를 생각하고 가족의 안부를 물어볼 겨를이 없을 지경이다. 핵 폐기를 전제로 한 이슈가 남북은 물론 북미간에 얽혀 있고, 세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지난달 27일 판문점에서의 남북정상회담 이후 한미정상회담, 북중정상회담, 한중일 정상들이 회동을 하는 등 유사 이래 이런 격동의 세월을 보낸 적이 있었나 할 정도다. 그러니 다른 문제들은 묻혀버릴 수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우리는 최대의 관건인 북미정상회담에 한동안 긴장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풍계리 핵 실험장 폐기와 상관없이 예정됐던 회담을 열지 않겠다는 트럼프의 발언이 나왔다. 다시 지난 26일 전혀 예상 못했던 남북정상 간의 만남이 긴급하게 이뤄졌다. 이러한 소용돌이 속에 누군가는, 한가하게 효를 바탕으로 한 인성 타령에 가정을 생각하며 가족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어린이나 청소년을 귀하게 여길 겨를이 어디 있겠느냐고 반문하겠지만 그렇지 않다.

사람의 본바탕은 어떤 경우에도 흔들려선 안 된다. 사람으로 태어나 휴머니즘 정신으로 어른을 공경하고 아랫사람을 사랑하는 정신을 이어나가는 것은 삶의 근본이고 기본이다. 바른 정치 실현이나 국제적인 우호도 국민이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고 절차다. 그런데 국가 권력을 잡은 이들이 국민의 안위를 지켜주기는커녕 국민이 그들의 정치행위를 걱정하고 있으니 큰일이다.

정부가 효문화 진흥과 장려를 위한 법률을 시행한 지 이미 여러 해가 지나고 있다. 해방 이후 70여 년에 걸쳐 지나치게 압축성장을 한 결과, 우리나라는 여러 분야에 걸쳐 엄청난 성과를 이룩했지만 성장통 또한 만만치 않다. 서구사회에선 수백 년에 걸쳐 이뤘던 민주화를 단숨에 이루는 과정에 국민 거개가 민주화 투사가 됐다. 또 세계적으로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경제 성장으로 다들 졸부가 돼 기고만장하고 있다. 게다가 너나 할 것 없이 다 최고 학부에 진학해 모두가 설익은 지식인이 됐다. 그뿐만이 아니다. 정치·노동·환경·빈부 문제 등에 걸친 NGO들이 투사가 되는가 싶더니 현실정치에 참여하면서 떼 지어 활보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전후좌우를 돌아보면 다 잘난 사람들뿐이다. 모두가 신분 상승이 됐다. 그 바람에 인륜이나 도덕을 존중하며 사랑과 존중, 배려로 살아왔던 전통이 허물어졌다. 전통가치를 소중히 여겨왔던 사고방식이나 어른을 공경하던 기존 질서가 사라진 지 오래다. 부모와 자식 간의 충돌과 부부간의 갈등, 형제간에 빚어지는 충격적인 문제들을 비롯해 남북 대치상황에서의 이념 갈등, 지역 갈등, 빈부 갈등으로 우리는 지금 혼돈의 길을 걷고 있다.

그로 인해 1인당 국민 소득 3만 불을 넘어 선진사회로 진입하려던 우리의 희망은 오래 전에 멈췄다. 정치꾼들의 표를 인식한 복지와 노사 문제 등으로 이마저 무너질지 모른다는 위기 속에 살고 있다. 지금 우리에겐 비전이 보이지 않는다. 그런 어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인간이 인간다움을 유지하면서 살기 위해 마련한 법이 효행장려법이 아닌가 싶다. 당연히 사람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예, 효, 정직, 책임, 존중, 배려, 소통, 협동 등 8대 덕목을 실현하기 위한 인성교육진흥법 제정도 뒤따랐다. 그러나 인간성 회복은 아직 요원하기만 하다.

북한 핵의 완전 폐기와 체제 보장을 전제로 하는 6월 12일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은 성사 여부를 쉽사리 예측할 수 없다. 이 긴박한 상황 속에 필자가 충효예나 인성 문제, 인간다움을 강조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사람이 사람다움을 잃으면 모든 것을 다 잃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람의 바탕인 ‘인간다움’을 잃지 않기 바라며, 북미회담이 성공적으로 개최돼 전쟁이 없는 평화를 누리고 싶은 간절한 마음으로 이 ‘5월의 편지’를 띄워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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