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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전(口傳). 말로 전해 내려오거나 말로 전한다는 뜻이다. 즉,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오는 것을 뜻한다. 대부분의 구전을 듣다보면 사실에 근거한 이야기라고 보기는 힘들 정도로 허무맹랑한 게 대부분이다. 또 눈으로 확인한 적은 없어 신빙성도 떨어진다. 그러나 구전을 듣는 건 흥미를 유발한다. 남성이 무협지에, 여성이 동화에 빠지는 이유와 비슷하다. 아니면 어렸을 적 할머니가 머리맡에서 해주시던 옛 이야기에 대한 그리움일 수도 있다.

5-1구간 내탑수영장길이 그렇다. 지금은 직접 본 이들이 드물어 당시의 아름다움은 입에서 입으로만 전해졌다. 그저 여느 구전이나 과거 이야기처럼 미화됐을 가능성도 높다. 그러나 그런 구전을 찾아 한 번쯤은 두 눈으로 확인해보고 싶은 게 사람의 욕심이다. 신대륙을 찾아 나섰던 콜럼버스처럼, 혹은 지구가 둥글다고 믿었던 마젤란처럼 말이다. 너무 거창할지도 모르지만 지금 세대에게 내탑수영장은 어쩌면 그런 의미다.

◆구전과 구전이 만나 얽혀지는 곳
내탑수영장길은 대청호오백리길 21개 구간의 정식 구간은 아니다. 그러나 과거 충청도민이라면 한 번씩은 찾았다는 내탑수영장 터가 있어 이곳을 찾는 등산객이 적지 않다. 출발지인 방아실입구를 나와 곧바로 고해산으로 향한다. 지난 취재 땐 길을 잃었지만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자 과거를 치르러 가는 몰락한 양반네 도련님처럼 크게 마음을 다잡고 걸음을 시작한다. 공부한 걸 잊을까 복습하는 도련님처럼 고해산을 오르는 길 하나하나에 모든 신경을 집중한다. 그리고 계속해서 주변을 둘러보며 현재의 위치를 확인한다. 고해산은 고도가 높지 않은 데다 솔잎이 내려앉아 발도 편해 힘들지 않은 만큼 걸음이 빨라지기 일쑤다. 그래서 길이 아닌 곳으로 향할 수 있다는 마음에 그 어느 때보다 발걸음은 조심스러워진다. 약 15분 정도 오르면 넓은 터가 나온다. 왼쪽엔 소나무 숲이란 액자를 둘러싼 대청호가, 오른쪽엔 안개란 목도리를 두르고 신록이란 옷을 입은 푸른 고리산이 펼쳐진다. 두 번째로 보는 광경이지만 이곳에서의 절경은 지치지도 않은 발걸음을 멈추게 하기 충분하다.

특히 전날 내린 비로 짙어진 아침안개가 바람에 일렁이며 산의 능선을 지나는 용처럼 꿈틀거린다. 바람의 흐름대로 움직이는 커다란 용의 움직임이 신비로움을 주며 그 광경에 반대편의 대청호의 절경은 기억상실이라도 한 듯 그 누구도 고개를 돌리지 않는다. 다행히 원래 목적지였던 내탑수영장을 향하는 도중이란 점을 알아차리고 고개를 돌린 순간, 느꼈다. 길을 잃게 되는 곳이 여기였다는 것을. 이곳엔 갈림길이 존재하는데 갈림길 사이의 거리가 1m도 채 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아무 길로 들어서도 언젠간 같은 곳에서 만날 거란 착각을 일게 한다. 출발 중이라면 오른쪽 갈림길, 즉, 대청호에서 가까운 길로 들어서야 한다. 지난 취재 땐 왼쪽, 산 쪽 갈림길로 향했다. 오른쪽 갈림길로 들어선 지 1분도 채 되지 않아 하나의 이정표가 나타난다.

이곳을 방문한 어느 나그네가 이곳에서 길을 잃지 말라고 표시해둔 하얀 자국들을 나무 곳곳에 표시했다. 자국은 50m마다 위치한 나무에 있어 햇살 하나 들지 않는 고해산에서 유일하게 이정표로 작용한다. 신대륙을 찾아 나서는 콜럼버스가 나침반에 의지한 것처럼 ‘같이 가요. 대청호오백리길’의 나그네들도 하얀 자국을 방향 삼아 미지의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나침반을 놓치지 않고자 발걸음은 빨라지지만 지난번과 같은 실수를 하게 되면 고해산의 명물을 지나치게 된다. 고해산에서 가장 유명한 아씨바위다. 아씨바위에 전해지는 이야기는 두 개가 있다. 가장 많이 인용되는 이야기에 따르면 과거 양반의 고장 충청도에 살던 몰락한 양반의 아리따운 아가씨가 있었는데 아가씨의 아버지가 가문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 소위 잘 나가는 양반집의 처로 보내려고 했다. 허나 아가씨는 이를 반대했는데 그 이유는 아가씨네 집에서 일을 하던 한 하인과 눈을 맞았기 때문이란다. 아무리 몰락했던 양반집의 아가씨라도 신분 차이가 있던 당시였기 때문에 어쨌든 양반은 양반이어서 아가씨와 하인의 사랑은 이뤄질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잘 나가는 양반의 처로 들어가 살아야 했지만 이마저도 싫었던 아가씨는 고해산에 올라 이 바위에서 금강을 바라보며 낙화하고 말았다고 한다. 그래서 이 바위를 아씨바위라고 한다.

이곳에 전해져 오는 또 다른 이야기에 따르면 아씨바위가 아니라 함박바위라 한다. 함박바위라 전승되는 이야기는 옛날 마음씨가 고운 한 아가씨의 이야기에서 출발한다. 아가씨는 마음은 고운데 얼굴이 못났다는 이유로 시집을 가지 못했다고 한다. 여기에 힘까지 장사여서 어느 남정네가 쉽사리 나서지 못했다. 아가씨와 결혼하게 되면 맞고 살 게 뻔했을 테니…. 혼기가 충분히 찼는데도 시집을 못 가자 분통이 터진 아가씨는 그 분을 풀고자 고해산을 올랐고 분을 삭히고자 큰 돌을 들어 절벽을 향해 던졌다. 그러나 큰 돌을 던질 때 자세가 잘못됐는지 아가씨가 원하는 방향으로 날아가지 않고 곧바로 또 다른 큰 바위에 떨어졌는데 큰 바위가 함박꽃처럼 깨져 함박바위라고 불린단다. 어떤 이야기가 진실이고 거짓인지 모르겠으나 서로 다른 전승이 내려올 만큼 이곳 바위는 제법 근처에서 유명했다고 유추할 수 있다. 아씨바위, 혹은 함박바위까지 왔다면 내탑수영장 터까지는 절반밖에 남지 않았다.

아씨바위, 혹은 함박바위에서 조금만 더 가면 고해산 정상이 나온다. 그리고 고해산 정상을 조금 더 지나면 탑봉이 나온다. 이곳의 봉의 이름 역시 특이한데 예상대로 이와 관련한 이야기가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오고 있다고 한다. 과거 타지에 사는 백만장자 집의 딸이 가출해 눈이 맞은 총각과 이곳으로 도망쳤다. 그러나 남자는 이름을 알 수 없는 병에 걸려 목숨을 잃었고 혼자 남은 그녀는 총각의 해탈을 기리며 큰 탑이 서있는 산속의 절에 들어가 불공을 드렸다. 그런데 갑자기 비가 내리자 큰 탑이 무너졌고 현재의 위치에서 멈춰 탑봉이 됐다고 한다. 나름의 이야깃거리가 있는 탑봉이지만 탑봉임을 알리던 작은 표지는 이제 해져 사라졌다. 그러나 탑봉에 다 왔음을 알리는 게 바로 또 한 번의 갈림길이다. 탑봉에서 계속 직진하면 내탑반도의 북쪽 끝으로 이어지고 왼쪽 내리막으로 향하면 내탑수영장 터가 나온다.

 

 

◆지금은 쓸쓸히 남은…
탑봉까지 왔다면 내탑수영장까지는 얼마 남지 않았다. 그러나 내리막길이 가팔라 빨랐던 발걸음이 이곳에선 느려진다. 계속된 내리막이 이어지기 때문에 지쳤던 체력은 조금이나마 회복되지만 걸음은 오히려 느려진다. 얼마 가지 않아 내탑수영장에 다가왔음을 알리는 청각의 알림이 시작된다. 바다에서나 들리는 청량한 파도 소리를 대청호에서 듣게 된다. 파도의 움직임은 소나무 숲을 뚫고 점점 더 생생해진다. 그리고 지금은 사라져 구전으로만 접한 내탑수영장 터가 나온다. 지금은 터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형태가 모두 사라졌지만 내탑수영장은 신탄진수영장, 장계수영장과 함께 금강의 3대 수영장이었다.

당시의 내탑수영장 모래사장은 그 어느 수영장보다도 넓었고 부드러웠다고 한다. 워낙 많은 인파가 모여 지금의 해수욕장처럼 자리싸움이 치열했을 정도로 인산인해였다고 한다. 다만 이곳에서 바라본 대청호의 청량함과 바람, 그리고 고운 모래빛깔은 당시의 아름다움을 상상하기에 충분한 소재가 된다. 그러나 사라진 형태와 더불어 높아진 대청호의 수위로 내탑수영장이 어떤 모습을 했을지 상상도 하기 힘들다. 모두 사라져 누군가의 기억, 그리고 추억으로만 남았지만 모래 언덕의 나무 한그루만이 곧 사라질지도 모를 추억의 끝자락을 잡고 있다. 두 눈을 감아 인산인해였던 내탑수영장을 감상하고 그 상상을 이젠 다음 세대에게 구전으로 물려주려 한다.
글=김현호 기자 khh0303@ggilbo.com
사진=노승환·김현호·정재인 기자
영상=정재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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