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평론가/저자

 

요즘 세상 돌아가는 게 하도 어지럽고 불안정해도 어깨를 으쓱하게 하는 소식이 있다. 방탄소년단(BTS) 얘기다.

방탄소년단은 빌보드 메인 차트에 해당하는 앨범 차트 ‘빌보드 200’에서 월드뮤직 앨범 최초로 정상을 차지한 데 이어 싱글 차트 ‘핫 100’ 10위권에 진입했다. 빅히트 기업 가치로 본다면 1조 원이 훌쩍 넘는다고 한다. 수년 전 세계 음악시장을 들썩이게 했던 가수 싸이는 ‘핫 100’에서 2012년 ‘강남스타일’로 7주 연속 2위, 이듬해 ‘젠틀맨’으로 5위를 차지했다. 그러니 방탄소년단의 기록은 싸이를 잇는 기분 좋은 행진이다.

전 세계가 방탄소년단에 열광하는 이유는 뭘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소통’과 ‘융합’을 들고 싶다. 방탄소년단은 SNS를 통한 팬들과의 소통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으로 전해진다. 블로그와 트위터, 유튜브 등은 기본이고 자신들의 이야기를 퍼뜨릴 수 있는 곳이라면 어느 곳이든 찾아 노래했다. 동시에 이들은 한 곡 안에서도 힙합과 트랩, 퓨처베이스 등 다양한 음악 장르를 섞었다. 여기에다 그들만의 청춘 스토리와 사회를 보는 눈, 어른들의 닫힌 세계 등을 솔직하고도 간절하게 노래로 엮어냈다. 다국적 팬들이 방탄소년단에 몰입하는 배경의 중요한 키워드는 소통과 융합인 것이다.
한데, 방탄소년단에 잠시 넋을 잃고 있다가 우리나라 ‘방탄 국회’가 떠올랐다. 방탄소년단의 ‘방탄’은 기존의 사회적 편견이나 기성세대의 꽉 막힌 생각들일랑 총알을 막듯 방어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물론 방탄소년단과 방탄 국회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방탄 국회의 꼴불견은 며칠 전에도 연출됐다. 국회는 홍문종·염동열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을 부결시켰다. 두 사람은 공금횡령과 부정청탁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됐었다. 이들은 공동체 질서와 국민의 결속, 국민의 자존감을 심각하게 훼손한 반사회적 범죄 혐의를 받아왔다.

더욱 심각한 것은 여야가 약속했던 개헌을 내팽개친 것이다. 국회 개헌특위는 1년 반 가까이 개헌논의를 이어왔으나 결론을 내지 못했다. 정치적 이해득실만을 따진 정치권의 정략 때문이다. 지방선거와 개헌 동시 투표는 지난 대선에서 여야가 한목소리로 장담했으나 언제 그랬느냐는 식이다. 특히 자유한국당은 대통령이 정부 개헌안을 국회에 제출하기 전만 하더라도 정부와 여당에 개헌안을 먼저 내놓을 것을 주장했다. 그러나 지방선거와 개헌 동시 투표가 실시되면 지방선거에 불리할 것으로 보고 나 몰라로 일관했다. 청와대와 여당도 오십 보 백보다. 한국당이 반대하면 국회 통과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점을 빤히 알면서도 일방적으로 개헌안을 내민 뒤 야당을 압박했다. 소통 노력은 안 보였다.

촛불혁명 당시 국민들이 그토록 애타게 요구했던 시민의 기본권 강화와 참여 확대, 지방분권, 권력구조 및 선거제도 개편 등을 어찌할 것인가. 개헌논의를 재개할 조짐만이라도 보이면 다행이나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다. 정치권이 도통 대화나 소통의 자세, 의지를 보이지 않고 정파이익만 계산하고 있다. “국민을 두렵게 보고 민생을 무엇보다 우선으로 의정활동을 펼치겠다. 지켜봐 달라.” 2년 전 20대 국회에 입성한 여야 의원 모두가 국회 일정을 시작하며 의원 선서와 함께 다짐했던 약속이다.

이런 약속을 믿을 국민이 얼마나 될까. 정치권이 정치불신과 정치혐오의 동굴로 깊이 들어가는 것 같아 가슴 아프다. 정치권은 국가와 민족의 앞날을 진정으로 고민하고 있을까를 생각하면 암담해지기조차 한다. 미국 정치권은 급박하게 돌아가는 한반도 정세변화에 깊은 관심을 보이며 다양한 논의를 벌이고 있다. 한데 정작 당사국인 한국 국회는 ‘판문점 선언’ 지지결의안조차 채택하지 못하는 현실이다. 강 건너 불보기다. 야당은 남북문제와는 무관한 세력인가. 또, 남북문제를 대통령과 몇몇 전문가들의 머리로만 풀 수 있다고 보나. 영국의 경제학자 콜린 클라크는 “정치꾼은 다음 선거를 생각하고, 정치가는 다음 세대의 일을 생각한다”고 말한다. 이 나라의 정치꾼들이여, 언제쯤 ‘정치가’로 등극할 것인가. 방탄소년단에게서 소통과 융합, 통합의 중요성을 깨우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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