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희봉 시인, 전 대전문인협회장

 
문희봉 시인

한국인의 평균 수명이 84세라 한다. 그러다 보니 요즘은 오래 사는 것보다 우아하게 나이 먹는 것이 화두가 되고 있다. 근데 우아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여자들은 여유로운 마음으로 온화하게 나이 먹는 것이고, 남자들은 노신사처럼 중후한 멋을 풍기며 나이 먹는 것을 말함이 아닐까.

얼굴도 20대까지는 부모님이 만들어준 것이지만 50대부터는 스스로 만드는 것이라 한다. 나이를 먹어도 언제나 밝은 얼굴, 선한 인상으로 호감을 주는 얼굴이 있는 반면 가만히 있어도 성깔 있어 보이는 얼굴이 있다. 얼굴은 그 사람이 어떤 마음으로 살아왔는가를 말해준다. 얼굴은 인생의 모든 깨달음들이 빚어내는 예술품이다. 얼굴은 그 사람의 자서전이다. 진짜 명품 얼굴은 공사 기간이 오래 걸린다. 명품 얼굴은 메스나 주사가 아닌 마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기에 그렇다.

인간의 노화는 그 어떤 의학으로도 막을 길은 없다. 그래서 그 노화를 아름답고 우아하게 바꾸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스트레스를 줄이고 편안한 마음가짐을 갖는 것은 그 노력의 일환이다. 사람이 살다 보면 별의별 일들과 부딪치게 되지만 언제나 긍정적인 마음으로 편하게 느끼면서 살아가면 곱게 나이 먹을 수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남의 험담보다는 칭찬하는 쪽으로 생활 패턴을 바꾸는 것이 좋다. 그러다 보면 완전히 다른 삶을 살 수 있다. 험담할 시간이 있으면 팔굽혀펴기나 맨손체조를 하는 것이 좋다. 수입의 아주 약간을 기부하며 사는 삶도 노화를 방지해 준다. 그러면 마음이 넉넉해지고 얼굴 전면에 개나리와 진달래 같은 웃음이 피어난다. 행복의 비결은 필요한 것을 얼마나 갖고 있는가가 아니라 불필요한 것에서 얼마나 자유로워지느냐에 달려 있다고 본다. 벌레 한 마리도 죽이지 못하는 착한 사람이라면 그는 분명 우아하게 나이 먹는 사람일 것이다.

아름답게 나이 먹기 위해서는 노화에 맞서지 말고 자연스럽게 수용하는 것이 좋다. 작은 주름 하나에 집착하는 삶은 안 된다. 그 작은 주름이 살아온 세월을 말해주는 것임을 알고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알맞은 피부 관리는 좋지만 과도한 성형으로 나이에 맞지 않는 어색함을 주는 얼굴은 오히려 우아함을 잃는다. 고무신을 신고 걷듯 발끝에 닿는 자갈 하나하나에도 체온을 불어넣고 생을 자근자근 씹으며 걷다 보면 인생은 재미있어진다. 내 고향 시골에는 지금도 코흘리개인 다섯 살 적 내가 살고 있다고 생각하면 좋다.

노화는 사람이나 짐승이나 생물에게는 피할 수 없는 과정 중 하나다. 한 살 한 살 먹어 갈수록 긍정적 사고와 베푸는 마음, 사랑하는 마음만이 멋지고 아름답고 우아하게 나이 먹게 해준다.

반대로 늘 불평하고 의심하고 경쟁하고 집착하는 것은 흉하게 나이 먹는 지름길이 된다. 하나가 필요할 때는 하나만 가져야지 둘을 가지려 혈안이 되다 보면 당초의 그 하나마저도 잃게 된다.

‘잘 물든 단풍잎은 봄꽃보다 예쁘다’고 한다. 봄꽃도 예쁘지만 떨어지면 지저분하다. 그래서 주워 가는 사람이 없다. 그런데 잘 물든 단풍잎은 떨어진 것도 사람들이 예쁘다고 주워간다. 때로는 책갈피에 끼워 오래 간직하기도 한다.
우아하게 나이 먹은 황혼은 곱게 물든 단풍잎보다도 예쁘다. 잘 늙으면 청춘보다 더 아름다운 황혼을 만들 수 있다. 밝은 마음을 지니고 긍정적이고 낙관적으로 살면 밝은 기운이 밀려와 삶을 밝게 비춰 준다. 하늘은 욕심을 버린 지 오래다. 흐린 날은 흐린 대로, 맑은 날은 맑은 대로 수용하며 지낸다.

열 지어선 나무들도 욕심을 버려 온 산은 평온하다. 햇살과 자연은 언제나 말없이 그 자리에 서 있는데 왜 인간은 복잡하고 욕심 많고 도전적인지 모른다. 만 겹 치마폭을 질끈 두른 계룡산, 얼마나 간절한 그리움을 간직한 벼랑이면 바위 끝에서도 물이 드는가? 그곳엔 근심, 걱정, 우수 같은 것은 없다. 노후에 보행의 자유를 잃는다면 영원히 용기 있는 청년, 보석 같은 처녀가 될 수 없다.

새벽 자동차 시동 거는 소리가 들린다. 내 사는 하늘에 오색 꽃으로 희망이 피어나고 있다. 세상은 빨간 사과처럼 탐스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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