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진 한남대 총동창회장, 전 대신고 교장

 

 

왼손을 주로 사용하는 왼손잡이들은 살아가면서 불편한 점을 많이 느낄 것이다. 이것은 우리 사회의 생활습관이나 구조가 오른손을 사용하는 사람 중심으로 짜여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집에서는 어린아이들을 기르면서 왼손으로 물건을 잡기 시작하면 곧바로 오른손으로 바꿔 준다. 나도 남매를 기르면서 숟가락을 쥐기 시작하자 오른손으로 잡게 했고, 연필을 쥘 때도 왼손을 사용하면 오른손으로 옮겨주면서 길렀다.

우리가 자랄 때는 왼손을 사용하는 친구들이 드물었다. 그래서 오른손을 쓰지 않고 왼손을 쓰는 아이들을 만나면 ‘왼손잡이’, ‘짝잽이’ 하고 놀렸던 기억이 있다. 그때는 왼손잡이라고 해도 수저를 들거나 연필을 잡을 때만큼은 오른손을 썼다. 왼손을 사용하면 어른들이 서둘러 오른쪽으로 교정해줘 장애인을 제외하곤 왼손으로 밥을 먹거나 글씨를 쓰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래서 왼손만 쓰는 아이를 보면 가정교육을 받지 못해 그렇다고 그 부모에게 비난의 화살을 쏟아붓기도 했다. 그런데 요즈음에는 음식을 먹을 때 왼손으로 숟가락과 젓가락을 잡거나 두 손을 모두 사용하는 사람들이 자주 눈에 띈다. 그리고 교실에서도 왼손으로 글씨 쓰는 학생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해마다 입학식 전인 2월이면 고교에선 예비고교생들을 소집해 배치고사를 치르고 그 성적을 바탕으로 학급을 편성한다. 어느 해인가 입학예정자들을 학교로 불러 시험을 치르던 날, 감독교사로 교실에 들어가 학생들에게 문제지와 답안지를 나눠주고 평가를 진행했는데 한 학생이 왼손으로 답안지를 작성하는 것이 눈에 띄었다.

한글은 한자나 일본 문자와는 달리 가로쓰기에 알맞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글씨를 써 나가야 한다. 그리고 일본 글자와 영문자에 없는 받침글자가 있으므로 왼손잡이들은 한글을 쓰기가 몹시 불편하다. 책상에 앉아 왼손으로 글씨를 쓰면 자세가 반듯하지 못하고 몸을 오른쪽으로 돌린 채 왼손목을 틀어 글씨를 쓰게 된다. 그러므로 앞에 서 있는 사람이 보기에도 불편하고 비뚤어진 자세가 눈에 금방 들어온다. 그리고 써놓은 글자는 크기도 고르지 않고 모양이 반듯하지 않아 글씨가 가지런하지 않으며 글자도 아름답지 못하다.

시험 감독을 하면서 답안지를 작성하는 학생들 사이를 천천히 돌다가 왼손으로 글씨 쓰는 학생이 있어서 뒤로 다가가 어깨너머로 바라봤다. 그런데 답지에 빈칸이 없이 가득 채운 것을 보고서는 대견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험과목이 내가 가르치는 국어 교과여서 작성해 놓은 주관식 답안을 살펴보니 성적이 뛰어난 학생이란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인물도 잘생기고 성적도 매우 우수한 학생에게 어떤 사연이 있어 왼손으로 글씨를 쓰게 됐는지 내심 궁금하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오른손이 불구라서 왼손으로 글씨를 쓰는 건 아닌지 측은하게 생각됐다.

시험이 끝난 뒤 그 학생을 불러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면서 오른쪽 손을 가만히 살펴봤다. 다행히 다친 것 같지 않아 슬며시 손을 잡으며 왼손으로 글씨 쓰는 이유를 물었다. 그때 학생인 K 군의 입에서 나온 대답을 듣고 나는 매우 놀랐다. 어렸을 때 왼손으로 글씨 쓰는 것을 부모님께서 일부러 바로잡아 주지 않았다고 한다. 서양 사람들은 왼손으로 글씨를 많이 쓴단다. 왼손을 자주 사용하면 우측 뇌가 발달해 균형감각, 공간인지력, 예술적 감각이 우수해진다고 한다. 그래서 K 군의 아버지가 아들이 왼손을 사용하도록 그냥 놔두셨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왼손잡이가 됐단다.

그러면서 레오나르도 다빈치, 아인슈타인, 뉴턴, 피카소와 같은 유명한 사람들이 모두 왼손잡이라고 나에게 알려줬다.
시험 감독을 하는 시간 내내 K 군이 장애인인 줄로 알고 측은하게 여기면서 안타까워했던 내 생각이 잘못됐다는 것을 알고는 오히려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면서 왼손을 사용했을 때 나타나는 장점을 알지 못했던 내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웠다. 지금은 학교에서 왼손을 사용하는 학생들도 많이 있고 선생님들도 계시다. 교육상으로나 미관상 좋아 보이지는 않지만, 우측 뇌가 발달하면서 균형감각, 공간인지력, 예술적 감각이 우수해진다는 과학적 근거가 있으니 믿을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는 어린아이들을 억지로 오른손을 사용하게 만들어 오른손잡이로 기를 필요도 없다는 생각을 해보며, 먼 훗날 왼손잡이들 가운데 역사적으로 이름을 남길만한 훌륭한 사람이 더 많이 나타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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