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관섭 배재대 비서팀장/전 대전일보 기자

주말에 잘 아는 작가의 전시 개막식 초대를 받아 그림에 관심이 많은 친구 부부와 함께 다녀왔다. 친구부인이 전시장을 둘러보면서 작품 밑에 붙어 있는 가격을 보고 깜짝 놀라며 “본래 이 정도 하느냐”고 물었다. 아마 자신이 생각했던 가격보다 훨씬 높았던 모양이다. 전시장을 나와 커피를 마시면서 작품가격이 책정되는 기준이나 과정, 구입처별로 보이는 가격차 등에 대해 설명해주니 조금은 이해하는 것 같았다.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의외로 그림에 대한 관심이 높다. 이들은 자기 취향의 작품을 구입해서 집에 걸어두고 싶어하지만 어떻게 구입해야 하는지, 얼마에 사야 적정한지에 대한 판단을 하지 못해 선뜻 작품구입에 나서지 못하는 경우가 적잖다. 더구나 큰 맘 먹고 작품 구입을 시도할 때도 화랑이나 작가가 의외로 높은 가격을 제시하는 바람에 곤란한 경험을 겪은 사람은 쉽게 다시 시도하지 못하는 것을 종종 본다.

천문학적인 작품 경매가가 화제성 기사로 보도돼 미술품 구입은 아직도 특정계층이나 접근할 수 있는 영역으로 인식하게 만들기도 한다. 지난달 김환기 화백의 붉은색 점화(點畵) ‘3-Ⅱ-72 #220’이 서울옥션 홍콩경매에서 우리나라 미술품 경매 사상 최고가인 85억 2000만 원에 낙찰돼 국민적 관심을 끌었다. 낙찰가만 보면 감히 개인이 접근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다. 그러나 이미 1000억 원대를 넘긴 중국이나 수백억 원대 작품이 수두룩한 일본 작가들의 작품가격에 비교하면 턱없이 낮다. 흔히 미술품의 가격은 그 나라의 품격과 비례한다고 한다. 그런 측면에서 아직도 100억을 넘긴 작품이 없는 우리나라의 실정을 감안하면 품격을 논하기에는 민망한 수준이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나라에서 그림을 좋아하는 평범한 사람이 전문작가의 작품을 집에 걸어놓기에는 말 그대로 아직 ‘그림의 떡’이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우선 우리나라에서는 집 벽면에 그림보다 가족사진을 거는 것을 더 자연스럽게 여긴다. 반면 외국 드라마나 영화 장면을 보면 집에 그림 한 점 정도 걸려 있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우리나라는 그림에 대한 인식이 보편화되지 않은 것이다. 또 작가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가격에 대한 거품요소가 많아 손쉽게 작품을 소유하기 힘들게 만드는 것도 또 하나의 요인으로 작용한다. 왜곡된 가격형성은 작가들만의 책임이 아니다. 대부분의 작가들은 오히려 피해자다. 미술시장이 보편화되고 활성화돼야 많은 작가들이 작업을 이어가고 보다 질 높은 작품이 나온다. 이 같은 생태계가 형성되기 위해선 정부의 미술계 지원정책이 뒷받침돼야 한다.

그림 애호가의 한 사람으로서 작품을 걸어놓고 감상하는 호사(?)를 부리는 집이 늘어났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가끔 지인들에게 프린트 그림을 액자에 넣어 선물한다. 사실 그림을 좋아한다고 하더라도 처음부터 비싼 작품을 구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먼저 좋아하는 작가의 프린트 그림을 벽에 붙여놓는 것부터 시작하자. 그렇다가 조금 여유가 생기면 아트작품이나 판화를 구입하면 된다. 이렇게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오리지널 작품에 눈이 가게 되고 그때 경로와 가격을 꼼꼼히 따져 자신의 능력에 맞게 구입하면 된다. 우리나라도 모든 집에 그림을 걸어놓는 풍경이 일상화되면 정말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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