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 대망새의 통치③

검맥질로 팬주룽의 사람들이 몰려들어 드넓은 평원에 바글바글했다. 각 분야의 바담들은 자신의 소임을 다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먼저 올래의 버섯지붕보다 스무 배나 큰 집이 지어지고 큰 집 앞으로 이천 채의 집을 짓기로 했다. 기존 검맥질에 남아있던 집들은 모두 허물어 새로 지었다. 큰 집의 지붕은 모두 열다섯 개였는데 가장 중심에 올래의 버섯지붕을 닮은 가장 커다란 집, 그리고 그 집을 빙 둘러 열네 개의 집들이 칸으로 이어지도록 했다. 올래의 버섯지붕을 닮은 가장 커다란 집은 대망새의 집무실이었다.
대망새는 이 집을 ‘드루봉’이라고 명명했다. 드루봉이란 ‘크게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뜻으로 바보처럼 백성들을 사랑하며 섬길 것이라는 대망새의 깊은 뜻이 담겨 있었다. 팬주룽 주변에서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노고록 사람들도 많았다. 그들은 대게 이렇다 할 공동체에 속하지 않은 씨족단위의 작은 무리였다. 하지만 팬주룽사람들도 몰랐던 부족단위의 공동체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는 동안 소금 같은 여름이 가고 시원한 색바람이 불어왔다. 가을이 시작된 것이다.

집을 짓는 일은 그 때까지도 이어져 늦은 가을이 돼서야 마무리가 되었다. 마침내 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살 집이 지어졌다. 장방형의 집들이 주를 이루었지만 타원형으로 지은 집들도 듬성듬성 섞여 지루하지 않았다. 검맥질의 산 정상에서 바라본 집들은 남쪽으로 끝없이 이어져 하늘과 땅의 경계까지 맞닿아 있었다. “천지가 개벽을 했습니다. 이제부터는 새로운 세상 아니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아이 안은 어머니를 닮은 바위산에 우뚝 선 대망새가 신료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렇습니다, 바가나치.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저희들은 바가나치의 명에 살고 명에 죽을 각오로 분골쇄신하겠습니다.”
푸른돌이 대망새의 뜻을 받들자 다른 신료들도 깊숙이 고개를 숙여 동조했다. 마음에서 우러난 존경의 표현이었다. 대망새는 신료들에게 제사를 드릴 준비를 하라고 지시했다. 백성들의 터전이 마련되었으니 당연히 믿고 의지하는 존재에게 보고를 드리고 안녕을 기원해야 했다.

대망새는 널따란 바위에 성전을 쌓고 수많은 종류의 제물을 올려놓았다. 과거 아버지 소낵의 장례식 때 보다 몇 배나 많은 제수음식들이 바위 위에 빼곡히 들어섰다. 그런데 그동안 보지 못했던 것들이 올라가 있었다. 좌측에는 검맥질의 흙과 우측에는 검맥질의 강물이, 그리고 중앙에 붉은 옥으로 만든 태양이 성스럽게 모셔져 있는 것이다. 대망새는 의식을 행하기 전, 자리에 모인 수많은 백성들을 향하여 위대하고 늠름한 연설을 했다.

“나는 드륵의 동물사냥꾼 집안에서 태어나 수많은 야수들을 잡았다. 댕글라에서 섬기는 곰도, 맬싹에서 섬기는 호랑이도 세 마리나 이 손으로 때려 눕혔다. 내 아버지 소낵은 호랑이와 맞서 싸우다가 영원한 생명을 바위에 새겨 넣었다. 나는 더 이상 이 땅의 그 어떤 동물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을 잡아 우리의 식량으로 쓸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그들을 섬겨서야 되겠는가! 우리는 이제부터 저 위대한 대지를 섬길 것이며, 대지를 키우는 태양과 물을 섬길 것이며, 우리 영혼의 안식처인 바위를 섬길 것이다. 나는 이제부터 저 대지에서 식량을 만들 것이며, 바다를 다스리는 고래를 잡아 인간의 위대함을 만방에 알릴 것이다!”

영원히 변하지 않는 바위를 제외하고 세상의 모든 자연물이나 동물을 섬기지 않겠다는 폭탄선언이었다. 백성들은 자신들의 바가나치가 무엇 때문에 태양과 물을 섬기려고 하는지 언뜻 이해가 되질 않았다. 다만 바위를 섬긴다는 말은 이해가 되었다. 그동안 바위를 비롯해 모든 자연물과 동물들을 섬겨왔던 관습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가나치가 결정한 것을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대망새는 연설을 마치고 본격적인 예식을 시작했다. “……”

대망새가 성단을 향해 양손을 올리자 만백성이 따라 하늘을 우러렀다. 한 손에 검을 든 대망새는 먼저 태양을 향해 기도를 올렸다. 그러는 동안 준비된 궁사들이 화살에 불을 붙여 태양을 향해 일제히 쏘아 올렸다. 태양의 불과 사람의 불이 하나가 된다는 의미였다. 그런 다음 성단에 있는 검맥질의 흙을 집어 제상에 뿌렸다. 그러자 임신한 여자들이 무릎을 꿇고 땅에 입을 맞추었다. 풍요와 다산의 의미였다. 대망새는 마지막으로 물을 입에 한 가득 물고 흙이 뭍은 음식들에 물을 뿜었다. 대지가 키워낸 동식물들에 생명을 불어 넣는다는 의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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