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 생존경쟁에 놓인 현대인의 삶
‘살기 가득찬 저격수의 아침에 비유
‘임전무퇴의 산물’ 독자들에 선보여

 

산꼭대기로 향했다
비가 부슬부슬 내려
땀인지 비인지 혹은 내가 물풍선인지
알아보기 어려울 때쯤
하얗게 빛나는 조개껍데기와 만났다

바다에서 태어나 자랐으면서
어쩌다 산에서 길 잃었는지
반쪽이 되어 떠도는 사연이 있다
짝을 잃고 산길 헤매는 모양이라니
돌아갈 곳 없는 발걸음에 실어
계곡물 바닥에 던져주었다
이제 마지막 인사는 떠올리지 않으리라

그는 고향으로 가고 있을까
사라진 한쪽을 품을 수 있을까
미끄러운 길을 내려오는 내내 비가 그치지 않았다
- 실향민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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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6년 애지신인문학상에 당선되며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시작한 박은주 시인이 시집 ‘방아쇠를 당기는 아침’(도서출판 지혜)을 펴냈다. 방아쇠를 당기는 아침은 임전무퇴의 소산이자 제일급의 저격수의 작품이다. 총알을 장전하고 쏠 수 있는 장치이며 방아쇠를 당긴다는 건 누군가를 향해 무차별적으로 총을 쏜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살기가 가득차고 피가 튀는 저격수의 아침이 방아쇠를 당기는 아침이다.

새로운 미래를 이루기 위해선 과거와 현재의 잘못된 연결고리를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 박 시인이 현재를 만들어놓은 고통스런 상황 속에 스스로 발을 담그는 것으로 시를 시작하는 건 그런 고민이 있어서다. 들어갈 땐 차마 마주할 수 없었던 것들을 다시 꺼내 실체를 밝히는 작업, 그러나 그는 고통에 휩쓸리지 않고 맡은 임무를 충실히 수행해간다. 이미 충분히 고통에 단련돼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1부 ‘오늘도 물 오른 연기를 펼친다’, 2부 ‘비우지 못한 말이 주머니에 달라붙는다’, 3부 ‘언젠가라는 시간은 오지 않고’, 4부 ‘아직 태어나지 않은 네가 되고 있어’로 엮어낸 시집엔 73편의 시가 담겨 상실로부터 야기된 혼란과 고통을 다스려가는 과정에서 얻어진 산물을 독자에게 선보인다.

이준섭 기자 ljs@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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