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형 청운대 교수

 

전주형 교수

말과 글이 무성한 시대다. 어느 때보다 자기표현이 활발하다. 개인 생각을 표현하는 매체가 다양해졌고 큰 폭으로 증가한 덕분이다. 특히 1인 크리에이터 시대가 되면서 블로그나 홈페이지부터 유튜브, 페이스북, 트위터 등이 적극적으로 활용된다. 개인이 대중과 직접 소통하기 쉽고 편리해졌다. 이는 정보통신기술 발달에도 원인이 있지만 자신을 표현하려는 욕구가 있기 때문이다. 자신을 표현하려는 몸짓, 표정, 그림, 음악, 영상 등과 말과 글은 구별된다. 말과 글은 언어라는 매체를 활용해 사유와 인식을 전달한다. 따라서 단순히 사실의 설명, 지식과 정보만 담고 있지 않다.

그 속에는 전하려는 사람의 의도가 내포되어 있다. 생활양식, 감정, 문화, 정서, 사고 방식과 영역, 생활환경 등이 그 예다. 따라서 말과 글은 귀 담아 듣거나 곱씹어 읽어야 뜻을 헤아리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말과 글 양에 비하면 뜻을 재고해야 하는 것은 적은 형편이다. 우선 생명력을 잃어버린 말이 많아졌다. 말은 상대방의 표정, 눈빛과 대화하는 수단이다. 마주 보고 나누는 교감이며 서로 호응하는 것이 큰 장점이다. 때문에 말하는 도중에 부족한 것을 보충하거나 자세히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일방적으로 전하려는 말이 많아졌다. 구호, 선동, 폭로 등과 같이 말잔치로 끝나는 경우가 그것이다. 이런 것으로부터 얼굴을 돌리고 귀를 닫고 싶은 심정이다. 전달하려는 사람이 듣는 사람을 생각하지 않는 탓이다. 단지 소란스러운 소음일 뿐이다.

말에 비하면 글은 기록된 결과다. 먼 훗날에도 읽을 수 있다. 글은 말처럼 듣는 대상이 눈앞에 꼭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당장 읽는 이가 없어도 글을 쓸 수 있다. 따라서 눈앞 상대방을 의식할 필요가 없다. 또 꼭 읽어야 한다고 강요하지 않아도 된다. 때문에 자신의 뜻을 생각하는 대로 펼칠 수 있다. 글쓴이가 진실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혹자는 글쓰기는 진정한 영적인 길이며 선(禪)이라고 말한다. 글쓴이를 속일 수 없고 독자를 속일 수 없다는 뜻이다. 김용택 시인은 “글쓰기는 세상을 보는 눈을 갖게 한다”고 말한다. 글쓰기를 통해서 세상의 모든 사물이 귀하다는 것을 깨닫는다는 것이다. 허투루 쓴 글은 존재하지 않으며 글쓴이는 영적으로는 풍요로워질 수밖에 없다. 루터(M. Luther)는 “세상을 바꾸고 싶으면 펜을 들고 써라”고 말한다. 종교개혁이 성공한 배경에 인쇄술이 있듯이 글은 자신과 세상을 바꾸는 힘이 있다. 문제는 어떤 말을 하고 글을 쓸 것 인가에 있다. 먼저 좋고 나쁨을 떠나 다른 사람의 말과 글을 듣고 읽어야 한다. 평가하고 판단하는 것은 다음 일이다. 듣고 읽는 과정에서 타인이 추구했던 세계를 감지하고 이해할 때 자신과 세상의 관계가 새롭게 정립된다. 거기에 인간의 필요와 욕구, 창조 의지, 아름다움과 추함, 선함과 악함, 진실함과 거짓, 완전함 등의 생각이 자란다. 또 자신은 혼자가 아니며 더 큰 세계와 연결되어 있다고 느낀다. 세상을 보는 새로운 눈을 가져 예전과 다른 말과 글을 쓰게 되는 것이다.

말과 글은 자신을 보여주는 거울이다. 따라서 사람의 인품과 그릇에 따라 달라진다. 또 세상에 남겨 놓은 레거시(legacy)다. 사람은 그가 남겨 놓은 재산이나 권력에 의해 평가받는 것이 아니라 말과 글에 의해 평가된다. 들을수록 뜨거워지고 읽을수록 새로운 생각이 펼쳐지는 말과 글, 거기에 생명 존중과 사랑이 가득 할 때 그가 쓰는 말과 글에 생명력이 더해진다. 월슨(T. W. Wilson) 대통령에게 10분짜리 연설을 할 때 얼마나 준비해야 하는지 물었다. “2주 정도입니다.” “한 시간 연설에는 얼마나 준비하십니까?” “약 일주일 걸리지요.” “그렇다면 두 시간짜리 연설을 준비하려면요?” “두 시간? 만일 두 시간 동안 지껄이라면 언제라도 시작할 수 있소.” 우리는 너무 많은 말과 글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단 한마디 말과 글을 위해서 일생의 모든 순간을 걸어야 할지 모른다. 그 동안 금강일보 지면을 통해 많은 글을 게시해 왔다. 읽은 이의 눈을 흐리게 하지 않았는지 마음이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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