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일 정치교육부장

 

참으로 부끄럽다. 민선 7기 대전시장 선거판을 뒤흔들고 있는 일명 ‘발가락 사태’를 보면서 1995년 지방자치시대 개막 후 23년간 지역사회, 특히 지역언론과 시민사회계가 적극 나서 제대로 된 후보 검증을 해본 적이 있었나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지역언론 종사자로서 내 스스로에게도 분명 책임이 있다는 자책을 하게 된다. 개인 신상에 관한 매우 단순하고 기초적인 후보 검증사항조차 당사자는 선뜻 이해할 수 없는 해명으로 어물쩍 덮고 넘어가려 하고, 상대 후보의 물고 늘어지기 선거전략으로 전락해 ‘네거티브’, ‘진흙탕 선거’로 치부되는 현실이 안타깝다.

더욱 마음이 아픈 것은 “당선이 유력한 여당 후보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어 좋은 게 뭐가 있나”라며 당당하게 검증을 요구하고 의혹을 제기하기보다 “좋은 게 좋은 거지”라는 식으로 최대 광고주가 될 시장 후보의 눈치를 살피고 사태 확산을 막으려 안간힘을 쓰는 지역언론, 그리고 이념적 성향이 맥을 같이한다는 이유로 철저히 침묵하는 시민사회단체들의 태도다.

과연 ‘건전한 진보세력’은 어디로 사라진 것인지 개탄스럽다. 그토록 지역 현안에 대해 제 목소리를 내며 “모든 사안에 다 개입하려 하나”라는 비아냥거림까지 감수해 가며 관(官)과 정치권에 맞서 정도(正道)를 외치던 일부 시민사회계 인사들이 선거캠프에 참여해 비판의 대상이었던 그들의 대변자를 자처하고 있다. 결국 지방자치단체와 지방의회 입성을 위한 징검다리로 시민단체 활동경력을 활용하는 게 아니냐는 비난을 자초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 충격 속에 “이게 나라냐”를 외치며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섰던 시민들의 진정성이, 우리 진영의 어두운 이면에 대해선 눈을 감고, 상대 진영의 일거수일투족은 ‘적폐’로 매도하는 흑백논리로 치환(置換)되거나 특정 정당의 당리당략을 위한 도구로 악용된다면 이 역시 너무나 가슴 아픈 일이다.

화(禍)를 키운 것은 검증의 대상이 된 허태정 후보 당사자다. 그가 병역 기피 의혹과 장애등급 판정 부정 의혹은 도덕과 양심에 관한 문제이고, 그 진실은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다. 그는 발가락 자해 의혹에 대해 1989년 공사 현장에서 사고를 당한 것이라고 항변하면서 “정확히 장소가 어디인지 기억할 수 없다”, “객관적인 근거 자료는 찾을 수 없다”라고 한다.

의혹이 커지며 13년이 지난 2002년 ‘한 손의 엄지손가락을 잃은 사람’으로 받게 돼 있는 6급 1호 장애등급을 판정받은 문제가 공론화되자 허 후보 측은 “과거 장애인 등록 절차가 강화되기 이전에는 장애 판단 시 전문의가 상지(上肢) 손실 기준을 하지(下肢)에도 적용하는 관행이 있지 않았나 추측도 가능하다”라는 해명을 내놓아 아연실색케 한다. 유성구청장 재임 시 140여 명의 장애인 등록을 재심사 등을 통해 취소시킨 지자체 수장이 16년간 장애인 신분을 유지해 오고, 이제 와서 당시 관행에 따라 잘못된 장애등급을 판정받았음을 자인한 셈이다. ‘발가락 사태’에 대해 ‘우리도 증명을 못하니 문제를 제기한 쪽에서 근거를 제시하라’는 식으로 시간만 끌어오다가, 빼도 박도 못하는 장애등급 부정에 관해선 여론에 밀려 ‘관행’이라는 구차한 변명을 한 것이다.

허 후보가 민주화운동으로 인한 수형(受刑)으로 군 복무를 면제받았다고 알고 있었다는 한 유권자는 그가 전과는 전혀 없고, ‘족지결손’이 군 면제 사유였음을 이번에 처음 알게 됐다며, “평소 운동신경이 뛰어나다고 자랑했고, 등산과 골프가 취미라고 했던 그가 ‘일상생활에 심각한 장애가 우려된다’라는 진단서를 발급받아 장애 등록을 한 것은 말이 안 된다”라고 지적했다.

걱정스럽다. 그가 당선이 된다 해도 각종 의혹을 말끔히 해소하지 않은 채 시정을 운영하는 건 시민들에겐 너무나 큰 불행이다. ‘대전, 새로운 시작’을 슬로건으로 내세운 그가 우울하고 찜찜한 시작을 해선 안 된다. 민선 6기에 무너진 시정을 다시 일으켜 힘찬 출발을 해야 하는 책무가 그에게 주어져 있기 때문이다.

“허 후보님, 지금이라도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솔직하게 과거를 털어놓으시고, 진정으로 새롭게 출발하는 모습을 보여주십시오. 시민의 한 사람, 유권자의 한 사람으로서 드리는 고언(苦言)이고 충언(忠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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