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 은퇴 후 삶

금강일보는 베이비부머 세대의 효와 사랑 이야기를 담은 임석원의 자전적 에세이 나는 내 아내가 너무 좋다를 인터넷판을 통해 연재합니다. 본보 201789일자 10면 보도

1955년부터 1963년 사이에 출생한 우리나라 베이비붐 세대는 한국전쟁 이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격변의 시대를 관통하며 살아온 세대로, 임석원의 에세이는 그 시대에 태어나 하고 싶은 것, 되고 싶은 것도 많았겠지만 자신을 위해서는 한 가지도 해 보지 못한 채 오직 가족만을 위해 굳세게 살아온 한 남자의 자전적 이야기이자, 곁에서 묵묵히 좋은 동반자가 되어 준 아내에 대한 절절한 고마움을 전하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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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 은퇴 후 삶

나는 노동의 가치를 누구보다도 귀하게 여긴다. 인생을 살아가는데 일이 없는 사람같이 불쌍한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사람은 평생 일만 하려고 태어난 게 아니라고 확신한다. 인도 힌두교에서는 인생을 크게 4단계로 구분해 살라고 가르친다고 한다. (1)태어나서 배우는 단계-(2)결혼해 자식을 낳아 기르고 재산을 축적해 가정을 세우고 사회적 의무를 다하는 단계-(3)가정과 사회를 떠나 명상과 청정한 종교생활을 하는 단계-(4)완전히 세속을 떠나 해탈을 추구하는 단계가 그것으로, 종교적인 부분은 차치하고 인생의 단계를 구분하는 데는 공감이 간다.

올해 말 퇴직 예정인 나는 개인연금은 2016년부터 국민연금은 2017년부터 받고 있다. 아내는 조만간 퇴직할 예정으로 개인연금을 받게 된다. (아내의 국민연금은 임의 가입으로 시작해 10년 정도 불입했기에 많지는 않지만 2020년부터 나온다.) 아내와 나 두 사람의 연금을 모두 합치면 매월 받는 연금액수가 그렇게 큰 금액은 아니지만 평생 근검생활로 잘 살아온 우리 부부가 살기에 부족하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돈의 많고 적음에 있지 않다고 본다. 은퇴 후 중요한 것은 남은 인생을 어떻게 잘 사느냐이다.

20144월부터 나는 반() 은퇴생활을 하고 있다. 일주일에 3일은 일하고, 2일은 도서관 두 군데 독서모임에 참여해 매주 두 권의 책을 읽고 있다. 회원들이 서로 추천해 책을 정해서 읽고 나누며 즐겁게 생활하고 있다. 책을 읽은 후 나와 생각이 같고 또 같은 감정을 느끼고 말하는 회원들은 나의 생각과 감정을 강화시켜 준다. 같은 책을 읽었어도 내가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말하는 회원들은 나를 깨우치고 나의 사고의 폭을 넓혀 준다.

완전 은퇴 후 나는 더 이상 돈 버는 일을 하지 않으련다. 책을 한 500권쯤 읽고 나서는 내가 살아오면서 만난 사람들을 소재로 독자들의 가슴에 정말 와 닿는 이야기를 쓰려고 마음먹고 있다. 은퇴 전 사회에서 나의 직업은 건설자재 구매 전문가였다. 은퇴 후 나는 책 읽고 여행하고 글을 쓰는 사람이 될 것이다. 육십 넘어서는 작가로 살아갈 것이다. 글이 잘 써지면 좋겠지만, 잘 안 써져도 어쩌랴?

나는 결혼 초부터 일방적으로 아내에게 우리 부모님에게 순종과 헌신만을 요구했기에 너무 미안했고, 그래도 못난 남편을 따라준 아내에게 너무 고마웠다. 신혼 초 2년 동안 남편도 없는 시집에 아내를 들여보내서 너무나도 심한 고생을 시켰었기에 후일 반드시 아내를 누구보다 행복하게 해주겠다고 결심했다. 해외 근무와 출장 등으로 어디든지 좋은 데를 가면 언젠가 아내를 데리고 함께 와보리라 마음먹곤 했다. 싱가포르 근무 중 휴가를 와서 아내와 하루 또는 며칠 국내 여행을 했을 때 아내는 너무도 좋아했다. 시집으로부터의 속박에서 벗어나 훨훨 날아갈 듯이 좋아하는 아내를 보고 나는 결심을 했다. 언젠가 때가 되면 형편 되는 대로 아내에게 해외여행을 시켜주겠다고.

1994년 입사 후 15년 근속 특별휴가를 받은 나는 아내와 첫 해외여행으로 12일간 유럽을 다녀왔다. 그 후 형편이 못 미쳐 못 가던 해외여행을 2000년부터는 시간을 내어 일본, 중국과 인도, 또 미국과 캐나다, 호주와 뉴질랜드, 그리고 유럽의 여러 나라를 여행했다. 많은 나라를 여행했지만 아내와 나는 아직도 가보고 싶은 나라가 많이 남아 있다. 아내와 나는 나이가 들었지만 아직도 새로운 곳에 대한 호기심과 기대, 흥분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든다. 지갑이 두둑해서 가는 풍족한 여행은 아니다. 빡빡한 살림 속 여행에도 아내와 나는 행복했다. 완전 은퇴 후부터는 여행자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우리나라 해변이나 산골 마을에서, 형편이 되면 프랑스 남부의 작은 마을에서, 미국의 조용한 도시 유타에서 아내와 둘이 몇 달씩 머물며 그곳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꿈을 갖고 있다. 그리고 그곳에서 글을 쓰고 싶다. 지금 소설뿐 아니라 역사, 인류학 등 이 분야 저 분야 많은 책을 열심히 읽고 있는 이유다.

우리 딸 지영이와 아들 주황이도 다 졸업하고 사회인이 됐다. 요즘 취직하기 어려운데 둘 다 직장에 다니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딸과 아들이 1단계 배움의 삶을 마치고 2단계 사회에 나왔으니 아내와 나 우리 세대는 우리의 자식 세대에게 이 사회를 넘겨야 한다. 우리 마음에 들든지 안 들든지 다음 세대의 사회가 잘 되기를 바라며 우리는 이제 3단계, 그리고 4단계의 삶으로 넘어가야 한다. 나는 내가 생각하는 멋진 3단계의 삶, ‘책 읽고 여행하고 글을 쓰는은퇴 후 삶을 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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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임석원은...

1956년 지리산 시골마을에서 태어났다. 대전고와 한남대를 졸업한 후 1980S그룹 S건설에 입사해 23년을 근무하면서 사우디·싱가포르·인도네시아 등 8년간 생활했다. 2003년 영국 유통회사 B&Q 구매이사, 2004년 경남 S건설 서울사무소장으로 일했다. 2009H그룹 H건설에 입사해 리비아에서 자재·장비 구매업무를, 2011E그룹 E건설에 입사해 중국과 동남아 대외구매를 담당했고, 2013년에는 전북 J건설 소속으로 사우디에서 근무했다. 지금은 34년 직장생활을 마감하고 미군부대에서 계약직으로 근무하면서 여러 분야의 책을 읽고 토론하는 분당 판교지역 독서모임에 참여하고 있다. 인생 후반기엔 책 읽고 여행하고 글 쓰는 삶을 계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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