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시민대학 인문학 강사

김충남 강사

옛 성현의 말씀이나 고전 속에 인생과 처세의 지혜와 길이 있다. 공감해보자, 그리고 공감했으면 실천해보자.

▲ 4가지를 지키며 살면 인생을 그르치는 일이 없을 것이다

① 총애를 받는 일, 공을 세우는 일, 이익을 취하는 일에는 다른 사람 앞에 나서지 마라.(寵利 毋居人前) 남의 증오와 시기의 대상이 되기 쉽다. 그러므로 이런 일에는 좀 더 여유를 가지고 남보다 한 발짝 뒤로 물러서는 자제심이 필요하다. 한 발짝 뒤로 물러서거나 양보했을 때 당장은 손해인 듯 하나 크게 보면 덕을 얻게 되고 화를 피할 수 있게 된다.

② 그러나 덕행을 베푸는 일에는 남에게 뒤처지지 마라.(德業 毋落人後) 덕행을 베푸는 일인 남이나 전체를 위한 일, 하기 싫어하는 일은 내가 앞장서서 해야 한다. 다시 말해 솔선수범해야 한다. 소인은 공을 세우는 일이나 이익을 취하는 일에는 남보다 앞다투어 하려고 하지만 덕행을 베푸는 일은 뒤로 빠지려 한다. 소인이 되지 말고 군자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③ 남에게 받는 것은 분수에 넘치지 않도록 하라.(受亨 毋踰分外) 분수에 넘치는 대접이나 지나친 대가를 받았다면 일단은 의심을 해 보아야 한다. 검은 유혹의 미끼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채근담에 보면 ‘분수에 넘치는 복과 까닭 없이 얻은 이익은 조물주의 낚시 미끼가 아니면 인간세상의 함정이라.’ 했다. 그래서 견리사의(見利思義)라 했다. 이익을 얻거나 대접을 받게 되면 그것이 과연 의로움인지를 먼저 생각해보아야 하는 것이다.

④ 자신을 갈고 닦음에는 분수 안으로 줄이지 마라.(修爲 毋滅分中) 세상사는 이치는 수기치인(修己治人)이다. 나를 바르게 한 후에 남을 바르게 하고 세상을 바르게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수신(修身) 후에 제가(濟家) 치국(治國)이 아니겠는가. 수신(修身)이 밑바탕이 되지 않는 치인(治人)은 모래 위에 쌓은 성과 같아 무너지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자기를 닦는 수기(修己), 수신(修身)에 힘쓰는 일은 만사에 근본이요 으뜸인 것이다. 그렇다. 이 네 가지를 지키며 산다면 인생을 그르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 공(功)은 자랑긍(矜)자에 무너진다
‘세상을 덮을 만한 공(功)도 한 낱 자랑긍(矜)자에 무너진다.’ 하였다. 공을 세우고도 자기 스스로가 공을 뽐내면 그 공은 빛이 바랜다. 그래서 자랑긍(矜)자에 공이 무너진다 하였다. 공을 세운 자의 필수 덕목은 겸손이다. 동서고금을 통하여 비명횡사한 영웅호걸이나 경세가들은 한결 같이 큰 공과 업적을 세우는 데는 뛰어난 재능을 발휘했지만 안타깝게도 겸손의 덕목을 지니지 못하였기 때문에 비명횡사한 것이라 하겠다. 그러므로 공(功)을 드러내지 않고 감추거나 남에게 돌리는 겸손에서 몸이 보전될 수 있는 것이다. 역사 속 개국공신들이 목숨을 걸고 주군을 보필하여 개국하는 데는 성공했으나 그 뒤 논공행상으로 공신들 간 시기질투로 서로 죽이고 죽는 화까지 불러일으키게 된다. 그렇다. 공성신퇴(功成身退) 공을 이루었으면 물러나라 하였다. 그래야 명예를 지킬 수 있고 화를 피할 수 있는 것이다.

▲ 공(功)은 30% 정도 나눠주고 과(過)는 30% 정도 나눠 가져라
누구나 공(功)은 혼자 독차지하고 싶어 하고 과(過)는 남에게 떠넘기고 싶어 한다. 그러나 공(功)은 독차지하면 원한을 사게 되고 과(過)를 남에게 떠넘기면 원망을 사게 된다. 그러므로 자기 혼자 세운 공이라 하더라도 30% 정도는 남에게 나눠주라 했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은 명나라 수군제독(水軍提督) 진린과 연합하여 남해바다에서 적과 싸웠는데 승리를 거둘 때마다 아군이 벤 적의 수급(首級)의 일부를 진린에게 나누어 주어 전공을 세우게 했다. 이 일로 인해 이순신 장군은 진린의 존경을 받게 되고 두 나라 군대는 화목 단결하여 무난히 전쟁을 치를 수 있었다. 또 일이 잘못되었을 때는 비록 자신의 잘못이나 실수로 인함이 아니었다 해도 30% 정도는 자기 앞으로 책임을 돌려서 함께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덕인인 것이다.

그렇다. 존경 받는 리더가 되려면 공(功)은 부하에게 나누어 주고 책임은 자신이 질줄 아는 그릇을 지녀야 한다.

<대전시민대학 인문학 강사>

저작권자 © 금강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