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산지의 戀子隨筆] 바라보기
[고산지의 戀子隨筆] 바라보기
  • 금강일보
  • 승인 2018.06.12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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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문제가 발생하면 책임전가 하는 사람
사회를 바꾸고자 혁명(革命)을 요구하고

문제가 발생하면 내 탓이요 하는 사람
사회를 바꾸고자 본인부터 변화하네

살만한 세상을 바라보고 사는 사람
살만한 세상을 만들어 가고

지옥 같은 세상을 바라보고 사는 사람
지옥 같은 세상을 스스로 만든다네

깨진 아스팔트, 시선(視線)이 머문 사람
불평과 불만, 비난의 말 토로하고

깨진 도로 위에 핀, 풀꽃에 머문 시선
생명의 경이로운 아름다움 노래하네


바라보는 시각 따라 생각이 바뀌는데
사람들은 언제나 자기 시선 고정하네

자살(自殺)을 뒤집으면 살자가 되듯이
역경(逆境)도 뒤집으면 경력(經歷)이 된다네

죽음의 생각이 생명으로 바뀌는
발상의 전환은 바라보기 나름이네

 

고산지 시인

‘이해한다’는 말은 무조건 의견에 동의한다거나 당신이 틀리고 그 사람이 옳다는 뜻이 아니다. 그 사람의 말과 행동을 인격적으로 존중한다는 의미다. 상대방이 옳다고 믿는 사실에 대해 충분히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는 마음이다.

‘+’가 그려진 카드를 보여주면서 무엇이냐 질문한다면 교사는 ‘플러스’, 산부인과의사는 ‘배꼽’, 목사는 ‘십자가’, 교통경찰은 ‘사거리교차로’, 간호사는 ‘적십자’, 약사는 ‘녹십자’라고 대답할 것이다. 이상의 대답은 틀린 것이 아니다. 자기 입장에서 사물을 바라보기 때문에 각기 다른 대답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이런 연유로 비판의 대상이 아니고 이해의 대상이 인간이란 말은 설득력을 얻는다. 성경은 이를 ‘정죄의 대상이 아니고 사랑의 대상’으로 표현한다.

‘다르다’는 ‘비교하는 대상이 서로 같지 않다’는 뜻이고, ‘틀리다’는 ‘셈이나 사실 따위가 그르게 되거나 어긋나다’는 말로 정의한다. 그러나 우리는 분명하게 다른 이런 말을 구분하지 않고 통상 같이 사용한다. 사람의 피부색이 옳고 그름으로 인식되면 차별이 될 수밖에 없다. 차별은 ‘다르다’를 ‘틀리다’로 잘못 인식하는 우리의 언어습관에서 비롯된 편견의 산물이다. 우리 안에 잠재된 낯선 것에 대한 두려움이 우리로 하여금 ‘우리’와 ‘우리가 아닌 것’으로 구분하게 만들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우리’ 안에 포함되지 않는 것들을 두려워하거나 무시한다. 각기 다른 모습을 지녔지만 인간은 똑같이 천하보다 귀한 존재다. 단지 낯설다는 이유로 천하보다 귀한 존재를 차별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악한 행위다.

수많은 사람들이 평등한 세상을 꿈꿨지만 세상은 단 한 번도 평등했던 적이 없었다. 극단적 사회주의자들은 자본주의가 오히려 불평등을 심화시켰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봉건사회나 근대사회의 불평등이 현대보다 훨씬 심각했다는 사실은 역사가 증명한다. 단지 불평등 체감지수가 봉건사회나 근대사회에 비해 지금이 높을 뿐이다. 불평등하다는 것은 사람들이 갖고 싶어하는 부와 명예, 권력이 균등하게 분배되지 않음을 뜻한다. 평등이 인간의 소중한 권리임에는 틀림없지만 평등만이 유일한 가치가 될 때 우리 사회는 전체주의화 내지 공산주의화된다.

이 점을 잘 알고 있는 극단주의자들은 국민들로 하여금 먼저 차이를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차이의 평등을 위해 선(善)이란 이름으로 사유재산권을 침해한다. 타자(他者)의 기본권을 침해하지 않는 질서의 자유가 문명의 진보를 선도했듯이 평등 또한 인류가 지켜야 할 숭고한 가치다. 그러나 주의할 것은 타자의 기본권을 인정하지 않는 평등한 세상은 혁명을 요구하고, 그것을 인정하는 사회는 자기성찰을 통한 변화된 삶을 추구한다는 사실이다. 개인의 잠재적 가능성을 실현하기 위해 스스로 선택·결정하는 자유를 방해하는 일체의 요소를 배격하는 자유주의 이념은 집단적 통제보다 개인의 자발성·자율성을 우선한다.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은 개인주의와 자유주의를 발아(發芽)로 발전됐다. 특히 종교개혁을 통해 가톨릭의 절대적 역할을 부정하고 성경 말씀으로 돌아가는 인간과 신의 교감을 강조했다. 기회가 평등한 조직에선 자기 능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결과의 평등을 추구하는 조직에서 사람들은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 지금 이 나라는 기회의 평등을 추구하는 긍정적이고 진취적인 자유인의 나라일까, 아니면 결과의 평등을 선이란 이름으로 포장한 노예의 나라일까, 심각하게 고민해 보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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