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민고 또래간 나눔학습 실천
학생들끼리, 영·수 나눔학습
무조건적인 방과후학교는 그만

또래교사 프로그램. 대전전민고 제공

교육부와 통계청이 공동 조사한 초·중·고 사교육비 현황을 보면 지난해 대전의 사교육비 지출은 학생 1인당 27만 5000원, 세종 26만 2000원, 충남 18만 8000원으로 나타났다. 사교육 참여율은 대전 72%, 세종 74%, 충남 69.3% 등 높은 수치를 보였다. 이에 따른 전체 사교육비만 해도 대전 6000억 원, 세종 1100억 원, 충남 5500억 원으로 규모만 놓고 봐도 상상을 초월한다. 교육수장을 뽑는 선거는 끝났지만 ‘사교육비 걱정 없는 교육환경’을 꿈꾸는 건 무리인걸까. 공교육 정상화 혹은 강화라는 교육 현장의 공통된 근심 아래 대전에선 수요자 중심의 나눔 교육으로 이를 극복해나가는 곳이 있다. 대전전민고등학교(교장 김현태)의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노력들을 살펴본다.

 

학생들이 작성한 ‘Reading-log’. 대전전민고 제공

◆ ‘지(知)맛대로 골라듣는’ 선택형 방과후학교
전민고는 올해 파격적인 시도에 나섰다. 지난 수십 년간 유지됐던 일제식 방과후학교의 틀을 깬 것이다. 고등학생이라면 으레 오전 8시에 등교해 밤 10시까지 학교에 머무는 게 당연시됐고 정규 수업이 오후 4시면 끝나는데도 오후 6시까지 보충수업을 들어야만 하는 고충이 이만저만 아니었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일제식 방과후 수업에 대해 학업흥미 저하와 공교육의 질이 나빠진다는 불만을 품어온 건 그런 이유에서다. 그래서 전민고에선 변화하는 학생들의 요구와 교육의 흐름에 발맞추고자 ‘분기집중 선택형 학교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분기집중 선택형 학교 프로그램은 교사가 분기별 강좌 개설은 물론 강의계획서를 작성하고 분기마다 강좌 당 약 20시간의 집중 수업을 통해 학생들의 학업 몰입도를 높이고 기존의 수능교과형에 더해 단기 프로젝트형, 테마형 강좌를 개설, 학생들의 발걸음을 돌리고 있다. 이와 맞물려 프로그램의 효과 극대화를 위해 사교육절감형 학교 예산 중 일부를 강사비로 지원, 학생들의 부담을 줄여나가고 있다. 학생들의 반응도 좋다. 프로그램 A그룹에서 ‘사회문제토론’, C그룹에서 ‘통합과학(개념보충)’을 선택해 듣고 있는 구민정 양은 “내가 고민해서 선택한 강좌라 더욱 열심히 하게 되는 것 같다. 앞으로 더 다양한 주제의 강좌가 많이 만들어져서 교과서를 뛰어넘는 공부를 해보고 싶다”고 귀띔했다.

교사들도 공교육 정상화라는 측면에서 나름대로의 긍정적인 분위기가 감지된다. 정길순 수석교사는 “학생들의 선택을 존중해주고 스스로 결정한 일에 책임을 지도록 가르치고 있다”며 “전민고 교사들 역시 정규교육과정과 차별화된 내용을 제공하기 위해 의미있는 배움터 조성에 전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교육의 질을 교사의 질이 넘지 못한다’는 신념이 깊게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영어도서관에서 진행하는 영어독서프로그램. 대전전민고 제공

◆ 나눔으로 함께 커가는 ‘또래교사’ 프로그램
전민고에선 매주 수요일 7교시가 되면 학급마다 5~6명의 학생들이 일일교사로 나선다. 지난 2015년 처음 시작한 또래교사 프로그램인데 교사를 목표로 하는 학생들을 중심으로 모여 영어와 수학 수업을 함께 준비하고 진행하며 나눔 학습을 펼친다.

가르치는 것인지, 배우는 것인지 모를 정도로 서툴고 어색하지만 표정만큼은 현직의 교사 못지않다는 게 학교 선생님들의 한결같은 목소리다. 또래 친구가 선생님이라서 그런지 학원이나 학교 선생님의 수업보다 학생들은 더 쉽게 다가가고, 더 많은 학습효과를 거두면서 자기 주도적인 학습 태도를 형성해 또래교사 프로그램은 사교육 의존도를 낮추는 참여형 교육의 든든한 버텀목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또래교사 프로그램에 참여한 한 학생은 “친구들이 수업하는 모습을 보니 더 열심히 공부해서 또래교사를 하고픈 맘이 간절하다”며 “우리 눈높이에서 설명을 해주니 선생님의 설명보다 이해가 어느 때엔 더 잘될 때도 있다”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윤정균 교감은 “혼자만 알고 있는 게 아닌 지식을 공유하고 나누는 과정에서 더 큰 배움이 생겨남을 요즘 크게 느끼고 있다”고 격려했다. 이처럼 또래교사 프로그램은 학업적인 지식의 공유뿐만 아니라 나눔을 통해 서로가 함께 성장하는 공동체 의식 함양에도 기여하며 사교육 수요를 흡수하는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 “나도 원서 읽는다”…영어독서프로그램
전민고 1학년 10반 학생들은 매주 금요일 1교시면 교실이 아닌 교내 영어도서관으로 모인다. 1시간씩 진행되는 영어독서수행평가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도서관에서 학생들은 다양한 책을 고르는데 자신의 수준에 따라 디즈니 동화부터 세계유명도서인 ‘해리포터’ 시리즈에 이르기까지 그 종류도 다양하다. 자신이 고른 책을 읽는 것부터 시작해 학생들은 ‘Riding-log’를 작성하며 과정중심 수행평가에 대비한다.

영어를 잘하고 싶다면 영어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는 건 당연한 결론이겠지만 선뜻 영어 원서를 손에 드는 학생은 매우 드물다. 전민고에선 영어를 습관화하고 있는 것이다. 1학년 전체 학생을 대상으로 주1회 영어독서시간을 부여하고 자연스럽게 다독(多讀)을 장려한다. 수능에서 영어가 절대평가로 전환된 것에 대해 일부에선 학생들이 영어를 소홀히 하게 될 것이라 우려하기도 하지만 긍정적으로 보면 고등학교에서의 수능 영어 대비 부담을 줄어 의사소통 중심의 영어교육을 실천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고도 볼 수 있다.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한 학생은 “내가 읽을 수 있는 수준의 영어원서가 있는 줄 몰랐다”며 “이제는 조금 더 두꺼운 책도 도전할 수 있게 됐다”고 흡족해했다.

이와 맞물려 전민고에서는 영어독후감쓰기대회도 주기적으로 열고 학생들의 성취욕도 고취시키는 데 주력하고 있다. 학교가 나서 영어책 읽기 기회를 제공하고 이를 통해 학생들에게 읽기 활동의 즐거움을 제대로 느끼고, 느낌을 글로 써 보며 사교육을 찾기 않고도 자주적으로 영어학습 능력을 키워준 덕분에 전민고의 내일이 든든하다. 하루종일 책상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교과서중심으로 공부하던 시대는 지났다. 변화한 학생들의 학업스타일을 탓하기보다 그에 맞춰 변화를 모색해가며 수요자중심의 교육을 고민하고 실천해 갈 때, 공교육의 신뢰도는 높아지고 사교육에 대한 의존도는 낮아질 수 있을 것이다. 공교육 정상화의 해법은 다른 데 있는 게 아니다. 답은 학교 현장에 있다.

이준섭 기자 ljs@ggilbo.com

저작권자 © 금강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