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숙 대전공고 교사

 

김지숙 대전공고 교사

 

“선생님, 58년생이셨어요? 와, 대박, 진짜…….” 시집 ‘58년 개띠’를 교실에 들고 들어가 한 권씩 준다. 아이들은 58년생의 현재 나이와 나를 견주며 웃는다. “아니! 이 시인이 1958년 개띠 해에 태어나셨대. 제목과 똑같은 시가 있는데, 그 시부터 먼저 읽어볼까?” “선생님, 이거 시집이었어요? 안 읽으면 안돼요?” “이 시집 읽으면서 앞으로 세 시간 동안 수업할 거고 이거 수행평가다. 그리고 너희 반은 두 번째 시간에 공개수업할 거야.” “아, 선생님 저희한테 왜 이러세요.” “아무도 안 자고 잘하면 ‘설○임’이고 아니면 ‘빠○코’다. 알았지?”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시집을 들춘다.

“야야, 이거, ‘담배, 다시 피우는 까닭’ 읽어 봐.” 담배 얘기에 눈빛이 바뀐다. “얘들아 ‘목욕탕에서 1’ 한 번 읽어볼래? 집중이 확 될 걸?” 몇몇이 키득거린다. “선생님, 이런 것도 시예요? 좀 이상한데….” “교과서에 있는 시만 보다보니 우리도 모르게 시에 대한 편견이 생긴 거야. 이런 것도 시야.”

각자 시집을 읽으면서 자유롭게 얘기 나누고 자신의 경험과 관련이 있는 시를 한 편 골라 학습지에 그대로 옮겨 적는 것이 1차시, 2차시는 공개수업으로 ‘시 경험 쓰기’ 활동을 한다. 2015 개정 교육과정에 따라 ‘한 학기 한 책 읽기’ 활동으로 소개한 것인데, 시를 읽고 자신의 경험을 떠올리며 글을 쓰는 활동이다. 갈래를 전환하여 글을 쓰면서 자신을 성찰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공개수업 시간, 다른 반 학생의 글 세 편을 보여준다. ‘담배, 다시 피우는 까닭’을 읽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잠시라도 쉬기 위해 일부러 화장실에 들락거렸던 자신의 경험을 담백하게 진술한 글, ‘돈’을 읽고 친구랑 옷을 사러 갔다가 자기는 돈에 맞춰 한 개만 샀는데 친구는 아버지께 전화하여 바로 돈을 받아 세 개를 샀다며 돈을 원망하지만 노력하지 않고 얻는 돈을 경계하겠다는 다짐으로도 들리는 글, ‘못난이 철학 1’을 읽고 밥상에 올라오는 반찬의 개수가 줄어든 경험을 말하며 엄마도 쉴 시간이 필요해서라는 깨달음을 고백한 글.

예시 글을 보고도 시작이 더디다. 글 쓰게 하느라 진땀 뺐다. 애들 사이를 오가며 열띤 호객행위를 벌였다. 다 쓴 글은 친구들과 돌려 읽으며 친구의 경험에 반응하는 댓글을 다섯 명 이상에게서 받도록 했다. 친한 친구한테 댓글 받으러 가는 몇몇의 모습이 귀엽다.

처음부터 수준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 선물을 고를 때 주려는 사람만 들뜨기도 하는 법이라며, 아이들에게 시집을 읽고 글을 쓰게 하는 경험 그 자체를 선물처럼 주고 싶었다. 왜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는가. 결국 아이들은 ‘빠O코’를 먹었다. 다음 시간에는 자신이 작성한 경험글을 바탕으로 시를 한 편 창작해야 한다. 나도 아이들한테 선물을 받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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