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없는 패배, 질곡의 32년
영광의 2002년, 잊고싶은 2014년의 기억
대한민국, 다시 반란을 꿈꾼다

또 한 번의 월드컵, 또 한 번의 통쾌한 반란이 시작됐다. 지난 월드컵을 돌아보면 우린 늘 도전자였다. 위기에서 기어이 희망을 발견했고 그 희망을 위해 목청껏 ‘대한민국’을 외쳤다. 2018 러시아 월드컵은 우리에게 어떤 추억을 남기게 될까. 1986 멕시코 월드컵부터 32년의 발자취, 대한민국 월드컵 역사의 시계를 되돌려본다. 편집자

월드컵은 경험하는 자리가 아니라 실력을 증명하는 자리다. 2014 브라질월드컵을 통해 우리 국민들은 대한민국 축구가 아직은 더 성장해야 함을 뼈저리게 느꼈다. 10번의 월드컵에서 31경기를 치른 그동안의 성적은 5승 9무 17패. 득점만 놓고 봐도 31골, 67실점의 초라한 성적이다. 하기야 첫 승을 본선 9회 연속 진출 시기로 따지면 1986 멕시코월드컵 이후 16년 만에, 월드컵에 첫 출전했던 1954 스위스월드컵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48년 만이었으니 새삼 세계 축구의 벽이 얼마나 높은지를 실감케 하는 대목이다.

한국전쟁의 상흔이 채 가시지 않은 1954년 스위스 대회에 첫 출전한 한국은 이후 월드컵 무대에서 자취를 감췄다. 종적이 묘연했던 한국이 다시 등장한 건 그로부터 무려 32년이 지난 1986 멕시코월드컵이었다. 이 대회에서 한국은 1무 2패, 조 최하위를 했지만 조별예선 1차전에서 박창선이 역사적인 월드컵 본선에서의 첫 골을 터뜨렸고 불가리아와 조별예선 2차전에서는 1-1로 첫 승점을 기록했다. 그러나 1990 이탈리아월드컵에선 지옥을 경험했다. 모든 경기를 통틀어 무적함대로 불리는 스페인을 상대로 한 골을 넣은 게 위안이 됐을 뿐 3전 전패의 굴욕을 당하며 초라하게 귀국길에 올라야 했다. ‘도하의 기적’을 발판삼아 극적으로 본선에 올랐던 1994 미국월드컵에서는 조별예선 2무 1패에 그쳤지만 그간의 설움을 벗어던지기라도 하듯 지난대회에 이어 다시 만난 스페인, 또 하나의 강호 독일을 만나 접전을 펼치면서 한국 축구 희망의 싹을 틔웠다.

그러나 기대는 거기까지였다. 4년 뒤 1998 프랑스월드컵은 한국축구가 배출한 세계적인 스타 차범근을 감독으로 내세우면서 국민적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았지만 멕시코와의 첫 경기에서 선제골을 넣고도 1-3 역전패를 당했고 거스 히딩크 감독이 이끌던 오렌지군단 네덜란드와의 두 번째 경기에선 다섯 골을 내리 얻어맞으며 감독이 월드컵 도중 경질되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맞았다. 첫 승과 16강 진출의 꿈을 다음으로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안방에서 열린 2002 한·일월드컵은 한국 축구 역사의 새로운 이정표로 남아 있다. 그간의 설움을 모두 보상받는 동시에 과분하게도 아시아 최초 4강 진출이라는 대기록을 남긴 대회였다. 월드컵 도전 48년 만에 첫 승은 물론 포르투갈(1-0), 이탈리아(2-1), 스페인(승부차기 승) 등 강호를 연달아 격파하며 세계 축구 변방의 대한민국을 단숨에 중심부로 진입시킬 토대를 마련해서다. 이어진 2006 독일월드컵에서도 비록 16강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토고(2-1)를 꺾으며 원정 첫 승전보를 전했고 프랑스를 맞아 1-1 치열한 공방전을 펼치면서 4년 전 4강 신화가 우연이 아니었음을 증명했다.

그런 의미에서 2010 남아공월드컵은 이제 한국도 세계 축구 무대에서 충분한 경쟁력이 있음을 보여준 무대였다. 비록 디에고 마라도나 감독이 이끄는 아르헨티나에 1-4 참패를 당하기는 했으나 2004 유럽축구선수권대회(EURO) 챔피언 그리스를 2-0으로 완파했고 나이지리아와 2-2 치열한 접전 끝에 사상 첫 원정 16강 진출의 쾌거를 이룩했다. 열기를 이어갔어야 했던 2014 브라질월드컵은 여러모로 아쉬움과 많은 교훈을 남겼다. 2000년대 들어 4강, 원정 16강 진출 등 물 오른 기세에 취한 한국 축구에 숙제를 남긴 기억 때문이다. 차기 개최국 러시아와 1-1 무승부를 기록한 한국은 복병 알제리에 2-4로 일격당한 후 마지막 조별예선에서 수적 열세인 벨기에에게도 0-1로 패배하며 조별리그 탈락의 수모를 당했다. 대회 이후에도 선수선발 등에 많은 문제가 불거지며 2012 런던올림픽에서 사상 첫 동메달 신화를 만들면서 차세대 한국 축구를 이끌 지도자로 주목받던 홍명보 감독도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만 했다. 굴욕과 눈물로 아로 새겨진 그 옛날 한국 축구 그 때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좌절만 할 것도 없다. 사실 한국 축구가 월드컵에 나서온 지난 64년의 역사에서 우린 수없이 많은 패배와 고통을 경험해왔기 때문이다. 그 통곡의 눈물과 불운 속에서도 끝끝내 한국 축구는 그 끈을 놓지 않았기에 4강 신화, 원정 16강의 꽃을 피울 수 있었다. 그리고 다시 월드컵의 시계가 돌기 시작했다. 2018년, 도전자 대한민국의 열한 번째 월드컵 무대의 막이 오른 것이다.

이준섭 기자 ljs@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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