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균 대전효문화진흥원 효문화연구사업단 단장

 

한동안 산소가 유행한 적이 있다. 물론 분자식 O2, 산소(酸素)를 말한다. 미세먼지가 위협하는 환경 속에서 산소는 듣기만 해도 신선함을 안겨줬다. 온갖 상품에도 산소가 등장했다. 술, 샴프는 물론 ‘산소같은 여자’란 노래도 나왔다. 이들 광고는 한결같이 보기만 해도 시원한 푸르른 산수(山水)가 배경이었다. 순수하고 청순한 자연미를 드러내고자 한 것이다.

또 다른 산소가 있다. 산에 만든 죽은 자들의 처소, 산소(山所)를 말한다. 어느 마을이든 동네 뒷산엔 대개 산소가 있다. 그것도 산수가 적절히 어우러진 가장 아름다운 공간이다. 풍수를 몰라도 산소를 보면 그곳이 얼마나 신경 쓴 명당인가를 직감할 수 있다.

그러고 보면 산소는 산 자나 죽은 자나 필수적인 요소이자 공간이라 할 수 있다. 살기 위해 산소가 필요하고 죽어서 가는 곳이 산소라는 것이다. 둘은 산과 물이 필수라는 공통점이 있다. 아름답고 깨끗한 산수가 산소(酸素)를 만들고, 그곳에 산소(山所)가 들어섰다. 산소는 삶과 죽음을 건강하고 편안하게 연결하는 요소이자 공간이니, 살아서도 산소, 죽어서도 산소인 셈이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공간이 대전에 있다. 보문산 자락에 위치한 중구 무수동이다. 원래는 물과 철이 많다고 해서 ‘무쇠골[水鐵里]’이라 했고, 한편으론 '하늘아래 근심 없는 마을'이란 뜻에서 ‘무수천하(無愁天下)’라고도 했다. 이 아름다운 공간에 동네가 있고 산소가 있다. 그리고 여기서 자연과 어우러진 효문화가 탄생했다. 아름다운 자연에 부모님 모시는 공간이 들어섰고, 바로 그 곳이 근심 걱정이 없다는 무수동(無愁洞)이다.

어린 시절엔 모든 것을 대신해 주시는 부모님의 자상한 보살핌 덕분에 근심 걱정거리가 없으니 무수(無愁)요, 나이 들어 고향산천에 내려와 부모님을 편안하게 모시며 세상사의 근심을 잊으니 또한 무수이다. 자효(慈孝)의 공간이 곧 무수의 공간이 된 것이다. 한창 나이에 수제치평(修齊治平)의 길을 걸으며 가졌던 근심걱정도, 다시 찾은 부모님 곁 고향산천에서는 눈 녹듯 사라진다는 뜻도 담겼다.

문제는 풍수지탄(風樹之嘆). 그래도 우거진 숲과 맑은 물소리와 더불어 영원한 안식의 자리에 누운 부모님 산소를 바라보며 자녀의 도리를 다하고자 했다. 아름다운 자연과 어우러진 효문화 공간 속엔 과거, 현재, 미래의 모습이 담겨있다.

유회당(有懷堂), 조선 영조 때 호조판서를 지낸 권이진(權以鎭, 1668~1734) 선생이 이곳 무수동으로 내려와 ‘부모님을 생각한다는 뜻’을 담아 지은 집이다. 뒤로는 부모님 산소가 있고, 주변엔 아름다운 숲과 시원한 물이 흐른다. 산소(山所)와 산소(酸素)가 어우러진 자연친화형 효문화 공간이다. 부모님과 자연을 가까이 하겠다는 철학이 담긴 삼근정사(三近精舍)도 있다. 삼근이란 산소, 시냇물, 철쭉꽃이 가까이 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고, 거기에 하거(何去)란 다른 이름도 달았다. “어디로 갈까?” “어찌 (이런 좋을 곳을 두고) 떠날까?” 어느 쪽으로 새겨도 자연과 효문화가 어우러진 내용이다.

여기엔 과거, 현재, 미래의 모습이 공존한다. 부모님을 그리워하며 추모하는 과거의 공간, 아름다운 자연을 최대한 활용하며 삶을 만끽하는 현재적 공간, 그리고 다음 세대를 위한 미래의 공간도 있다. 바로 여경암(餘慶菴)과 거업재(居業齋)이다. ‘여경’이란 “선행을 쌓으면 경사가 넘친다”는 주역의 도덕적 가르침이고, ‘거업’이란 거경궁리(居敬窮理)의 공부방법과 내용을 말한 것이니, 자라나는 미래 세대를 위한 학습공간이 바로 무수동에 있다는 것이다.

보문산 자락의 아름다운 풍광과 어우러진 무수동의 효문화공간은 대전의 자랑이 아닐 수 없다. 이를 잘 개발하고 활용한다면 한국의 정신적 핵심가치인 효문화가 얼마나 낭만적이고도 아름다운 것인가를 몸소 체험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효문화진흥원에서는 이렇게 아름다운 한국의 효문화자원을 중장기적으로 꾸준히 발굴 조사하여 한국의 대표 관광상품으로 개발할 예정이다. 그런 가운데 대전은 세계가 주목하는 한국효문화의 중심이 될 것이고, 또 우리의 효문화가 과거의 유산이 아닌 현재와 미래적 가치임도 확인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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