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대화초 박정은 교사

해마다 6월이면 엑스포 한빛탑 광장에서 음악 분수가 열린다. 여름 밤하늘을 아름다운 음악과 함께 형형색색으로 수놓는 분수를 보고 있으면, 이보다 황홀할 수가 없다.

올해도 개장 소식을 듣자마자 가족과 함께 음악 분수를 보러 갔다. 그런데 올해는 감상은커녕, 곳곳에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행동들 때문에 마음이 불편했다. 분수대 앞에 접근 금지 줄이 쳐져 있는데도 그 안으로 들어가는 아이, 접근 금지 줄에 매달려 있는 아이, 분수 쇼가 열리는 광장에서 킥보드를 타고 다니는 아이, 그걸 보고도 제지는커녕, 너도 나가서 봐 하면서 자기 자식을 떠미는 부모들까지, 공연 내내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다. 화염이 나오는 마지막 공연 시작 전에는 위험을 알리는 방송까지 나왔지만 분수 앞에 선 아이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아이들의 이런 무질서한 행동들을 허용하는 부모들을 어떻게 이해해야할까. ‘다른 아이들도 다 앞에 나가서 보는데’라거나 ‘벤치에 앉아서 보는 사람들은 보이든 말든, 우리 아이만 잘 보면 되지’ 이런 생각일까? 어쩌면 공공장소에서 지켜야 할 규칙이나 질서에 대해 무감각할 수도 있고 타인이 느낄 불쾌감이나 불편보다는 본인과 본인 아이의 편의가 우선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정해진 자리에 앉아서 관람하기, 공연 중에는 무대 쪽으로 돌아다니지 않기, 위험한 곳에는 가지 않기와 같은 규칙은 왜 필요할까.

세상 어느 부모도 자기 자식이 이기적이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사람으로 자라는 것을 원치 않을 것이다.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사회성이 높으며 어디에 가도 인정받는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게 부모의 바람이다. 이러한 높은 사회성은 도덕성이 그 바탕이 된다. 도덕성 없이는 사회성도 없다. 도덕성은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길러진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건 잘못된 생각이다. 도덕성은 유아기 때 이미 형성되기 시작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도덕성을 키울 수 있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부모부터 도덕에 민감해져야 한다. 아이들은 부모의 행동을 보면서 배운다. 횡단보도로 길 건너기, 신호 잘 지키기와 같은 생활 속 규칙들을 부모가 잘 지켜야 한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여전히 아이 손을 잡고 무단 횡단하는 부모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이런 아이들은 학교에서도 규칙에 둔감하다.

도덕은 연습이고 훈련이다. 착한 사람이 되어야지 하고 마음만 먹는다고 해서 그런 사람이 되지는 않는다. 바람직한 행동들을 생활 속에서 꾸준히 연습하고 훈련하여 내 몸에 체화가 되었을 때 비로소 도덕성이 높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연습과 훈련은 부모가 자녀들이 어렸을 때부터 지속적으로 해야 한다. 간혹 도덕적인 행동들이 손해와 불이익을 준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이러한 손해와 불이익은 일시적이며 길게 내다보았을 때는 도덕성이야말로 자녀의 성공가능성을 높여주는 중요한 요소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처음 보는 아름다운 분수의 광경에 앞으로 뛰어나가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아이라면 당연하다. 그럴 때, 부모가 규칙의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해주고 뛰어나가고 싶은 마음을 참게 만드는 것, 그러한 노력이야말로 우리 아이의 도덕성 발달에 첫걸음이라는 점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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