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우 한남대학교 홍보팀장/전 한국일보 기자

 

글쓰기라는 게 묘하다. 하얀 여백에 검은 글자를 채워가는 것은 글쓰기의 1%일 뿐이다. 99%는 보이지 않는 세계에 있다. 펜을 쥐거나, 자판 위에 손가락을 올릴 때, 비로소 머릿속에서 생각이 깨어나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뒤섞여 있는 생각을 정육면체 큐브를 맞추듯이 이리 돌리고 저리 돌려서 색을 맞추고 모양을 만든다. 엉킨 실타래처럼 생각이 잘 안 풀려서 힘들고 지칠 때가 많다. 때론 내 안에 이런 기막힌(?) 생각이 숨어 있었나 하고 기쁨이 밀려올 때도 있다. 극히 드물지만.

더 빈번히 경험하는 건 글을 쓰면서 내 생각이 바뀐다는 사실이다. 어떤 이슈에 대해 처음엔 분명 ‘찬성’ 입장이었는데 집중해서 깊이, 더 깊이 생각의 길을 걸으면 어느새 ‘반대’ 푯말 앞에 서있기도 한다. 뭔가 잘못된 것일까. 그렇지 않다. 생각은 움직이고 변한다. 처음엔 막연하고 즉흥적이었던 생각이 점차 글과 더불어 성숙하고 정돈되며 발전한다. 생각이 지나간 길이 글이다.

생각이라는 게 묘하다. 일상에서 그냥 하릴없이 깊어지거나 발전하지 않는다. 인위적인 노력이 가해져야 한다. 물론 글쓰기만이 생각의 유일한 도구는 아니다. 타인과의 진지한 대화나 토론, 그리고 책읽기 등도 생각을 한층 고양시킨다. 지식의 확장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만의 생각의 근육을 만드는 것을 말한다.

타인의 도움 없이 스스로 생각의 근력을 키우는 훌륭한 도구가 글쓰기다. 혼자만의 사유, 사색, 명상 등도 좋다. 하지만 실천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짧든 길든 형식을 갖춰 글이라는 결과물을 만드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 아령을 들면 알통이 생기는 법. 글을 쓸 때 사색은 따라오기 마련이다. 사람들은 생각이 모아져야 글이 나온다고 말한다. 맞다. 하지만 필자의 체험에 따르면 그 반대도 맞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와 비슷하다고 할까. 생각이 있어야 글을 쓰겠지만, 글을 쓸 때 생각이 만들어진다는 것도 사실이다. 살짝 과장하면, 글쓰기가 곧 생각하기다. (글을 안 쓰는 사람은 생각이 멈췄다고 말하지는 않겠다.)

우리는 호모 스크리벤스(Homo scribens), 글 쓰는 존재다. 일기도 좋고, 소셜미디어도 좋다. 자주 쓰자. 완벽하게 정리된 생각이나 글은 인간에게 불가능하다. 부족하지만 현재의 내 생각을 정리하면서 살아가는 것만으로 의미가 있다.

설령 얼마 안가서 그 생각이 바뀔 지라도 말이다. 생각의 변화를 확인하는 것, 이 또한 글쓰기와 기록이 지닌 장점이다. 과거를 반성하고, 지금의 자신 또한 틀릴 수 있다는 점을 떠올려 스스로 겸손하게 만든다.

글을 쓰면 생각과 태도와 운명이 바뀐다고 누군가 말했다. 내 안의 심연에서 지혜를 길어 올리는 깊은 글을 언젠가 써보고 싶다. 일단 이 부끄러운 글을 마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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