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로 본 계룡산은 대전, 세종, 공주, 논산, 부여, 계룡 등으로 국민이 주인인 시대의 수도(首都)로 알려져 왔다. 계룡시의 지세는 계룡산의 주산인 천황봉의 남쪽에 위치하며, 역사적으로도 도읍을 준비했을 만큼 유명한 곳이다.

조선 초 태조 이성계에 의해 새로운 도읍지로 지목돼 대궐과 종로 터, 하천공사를 진행했으나 결국 뜻을 이루지 못했다. 정감록에 의한 민중이 주인인 새로운 시대로 인식돼 팔도의 지식인과 백성들이 계룡산으로 모여들어 철학과 종교의 터전으로 성장했다. 1970년대에 행정수도 건립 후보지로 거론됐고 80년대는 국방의 핵심적 기능을 수행하는 육군, 해군, 공군의 사령탑인 3군본부가 위치해 국방의 도시로서 계룡시가 건설되고 있다.

계룡산은 산태극, 수태극을 이루는 풍수의 대길지다. 이는 음양인 산과 물이 태극의 형상으로 진행되며 이는 자연의 순환 원리에 의해 무궁무진하게 발전을 이룰 수 있는 형국이다. 산세는 백두대간의 기운이 북쪽인 북부지방에서 내려와 동쪽인 강원도와 경상도를 거쳐 남쪽인 전라도 무주, 진안에서 위로 올라와 충청인 계룡산에서 산태극을 형성하고 수세는 계룡산의 두계천이 북쪽에서 시작해 남쪽을 지나 동쪽인 영동, 옥천, 대전의 수세와 합류해 북쪽인 세종시와 공주를 돌아 서쪽인 부여와 논산으로 금강이 휘돌아감으로 수태극을 이룬다.

계룡시는 주산인 천황봉이 북쪽에 위치하며 동서로 많은 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고 남쪽에 넓은 자리가 형성돼 전형적인 배산임수형이며 남향으로 도시가 배치될 수 있는 명당을 이룬다. 또 신도안이 마치 금닭이 알을 품고 있는 형상인 금계포란형(錦鷄抱卵形) 명당을 형성하고 있다. 이성계가 도읍지로 정해 신도안에 4대문, 종로터, 대궐터 공사를 한 곳이기도 하고, 현재 3군본부가 자리하고 있다.

새로운 수도는 새로운 시대정신을 반영해 성장해야 한다. 계룡시는 백성이 주인인 나라를 희망했던 우리 민족의 염원인 계룡산시대의 역사성을 잘 제시하고 있다. 계룡은 산태극, 수태극의 형세와, 금계포란형, 회룡고조형, 쌍룡농주형 등 풍수로 본 한반도에서 최고의 길지이다. 옛말에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좋은 명당이라도 이를 활용하지 못하면 쓸모가 없는 것이다. 이처럼 중요한 입지인 계룡시를 중심핵으로 시작해 대전, 세종, 공주, 부여, 논산에서 새로운 시대가 시작돼 전국 지역이 고르게 발전하고 서로 상생함으로써 진정한 국민이 주인인 시대가 개창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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