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평론가 / 『 밸런스토피아 』 저자

먼저 부끄러운 고백을 해야겠다. 한국과 독일과의 월드컵 경기가 벌어지기 전 필자는 한국이 독일을 이기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한국의 승리를 기대하기에는 실력 차이가 나도 너무 나기 때문이었다. 독일은 이전 월드컵의 우승국으로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1위다. 이번 대회의 강력한 우승후보다. 필자는 이 경기 전 지인들과의 만남에서 “독일전은 가벼운 마음으로 그저 열심히 응원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기지도 못할 걸 기대치가 높으면 실망만 커질 뿐이라고도 했다. 대체로 공감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한국은 독일을 2-0으로 격파했다. 한국의 기적에 환호성을 올렸지만 낯을 들 수 없었다. 한국이 독일을 이기는 건 불가능이라는 필자의 안이한 판단이 얼마나 부끄러운 것인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내 안의, 우리 안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일반적인 잣대로 재단해 무시하고 포기하는 관성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일깨워주는 경기였다.

경기가 종료되는 순간, 한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지방대 몰락 위기다. 지방대는 지금 총체적인 비상 국면이다.

며칠 전 교육부는 '2018년 대학 기본역량 진단’ 1단계 심의 결과를 발표했다. 진단 1단계를 통과한 대학은 자율개선대학으로 대학 스스로 구조조정을 하면 된다. 그러나 1단계를 통과하지 못하고 8월 2단계 진단이 예고된 86개교는 생사의 기로에 섰다. 2단계 진단에서 역량강화대학으로 분리되면 정원감축 권고에 그친다. 하지만 재정지원 제한대학이 되면 정원감축 권고에다 각종 정부지원 중단에 직면하게 된다. ‘부실대학’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사실상 퇴출의 길로 내몰리는 것이다. 이처럼 살 떨리는 2단계 평가를 받아야 하는 대학 중 90% 정도가 지방대학이다. 교육부의 대학평가가 ‘지방대 죽이기’라는 말이 이래서 나온다.

대학구조개혁의 불가피성을 모르는 이는 없다. 그러나 지방대를 가능한 살릴 것인가, 아니면 몰아낼 것인가의 인식에 따라 구조개혁의 방향성과 방법론은 하늘과 땅 차이가 날 수 있다. 지방대는 급격한 저출산과 학령인구 감소의 직격탄을 맞아온 곳이다. 지방대는 규모나 평가 지표 등 제반 여건에서 태생적으로나 구조적으로 불리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당국의 평가 잣대는 수도권과 다르지 않다. 성과 내지 경쟁만능주의 원칙이다. 이야말로 ‘기울어진 운동장’에서의 경기다.

지방대 문제를 풀지 못하면 우리 사회의 수많은 교육 병폐들을 치유하기 힘들 뿐 아니라 국가경쟁력을 높이기도 어렵다. 우리 사회의 지나친 학벌 중시 풍조나 과도한 입시경쟁, 국가의 근간을 뒤흔들고 있는 사교육비 문제 등도 따지고 보면 지방대 문제와 이어져 있다. 미국의 경우 탄탄하게 성장한 주립대들이 대부분 세계적인 명문대로 통한다. 지방대 발전이 지역 및 국가 경쟁력 향상의 선순환이 되도록 획기적인 지방대 육성방안이 마련돼야 한다. 지방대 문제는 심각한 지방 문제를 해소하지 않으면 풀기 어렵다. 한국고용정보원 자료를 보면, 앞으로 30년 안에 전국 시·군 가운데 3분의 1 이상이 ‘인구 소멸지역’(거주인구가 한 명도 없는 곳)이 될 것으로 전망됐다.

그러면 서울은 괜찮은가. 사람들이 서울을 빠져 나오는 탈(脫) 서울 현상이 심상치 않다. 서울시 인구는 2016년 3월 기준 999만 9116명(재외국민 제외)으로 1000만 명 아래로 떨어진 이래 감소세다. 지방도, 서울도 동반 쇠락의 조짐인 것이다. 일본의 미래전략을 연구하는 일본 창성회의 마스다 히로야 대표는 ‘인구소멸’이란 저서에서 인구의 도쿄 일극 집중을 막고 지방이 자립하는 사회를 건설해나가는 것이 지방소멸을 막는 해법 중 하나라고 말한다.

비정상은 엄청난 부작용과 후유증을 유발하며 고통을 안겨주는 법이다. 우리의 극히 비정상적인 수도권 집중현상을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여기고 방치한다면 이 나라 전체가 소멸의 길로 접어들지 모른다. 한국은 저출산율과 자살률이 유난히 높은 위험사회다. 한국축구의 독일전 기적은 모두가 하나가 되어 절실히 원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지방을 살리는 기적도 우리 모두의 절실함이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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