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진 한남대 총동창회장, 전 대신고 교장

 
박영진

아침나절 무심코 던진 한마디가 종일 아내의 마음을 상하게 했고, 가족 모두의 하루를 몽땅 망가뜨릴 줄은 몰랐다.

“내 가방도 좀 갖다 주지 그래요.” 아내의 볼멘소리가 들렸다. 주방에서 설거지하던 아내가 가정예배를 드리는 시간이 되자 자신의 성경책만 들고 거실로 나오는 나를 보면서 한 얘기였다. 그리고는 젖은 손을 닦으며, 방으로 들어가 성경책 가방을 갖고 나오면서 시계를 쳐다본다. 미처 아내의 책가방을 생각하지 못한 나는 미안했다. 평소에 자상하고 친절하지 못한 성품을 지닌 나는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심도 그리 넉넉지 못한 편이다.

내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에도 요즘 말로 소위 ‘짱’이라고 부르는 우두머리가 있었다. 우리들의 짱인 Y는 또래들보다 나이가 한 살 위였다. 덩치가 커 운동장 조회시간 밖에 서면 우리보다 머리 크기 하나만큼 위로 솟았다. 그래서 누구든지 Y에게 감히 덤빌 엄두도 내지 못했고, 자연스럽게 그는 우리 학급에서 대장 노릇을 했다. 그 당시에는 집에서 학교까지 거리가 먼 동네 아이들은 십 리가 넘는 길을 걸어다녀야 했다. 그래서 등하굣길엔 동네 아이들이 함께 모여 떼를 지어 다녔다.

Y는 등하교를 하면서 자시 책가방을 다른 아이들에게 들고 다니도록 시켰다. 그러다가 선생님에게 발각돼 크게 야단맞은 적이 있다, 그때 선생님은 “공부를 못하는 녀석들이 남에게 가방을 들고 다니게 시키는 것이다. 책가방은 꼭 자기가 들고 다녀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나는 자신의 책가방은 자기가 들고 다녀야 되는 것으로 알았고, 남에게 책가방을 들게 시키는 일은 비열한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가정예배가 끝나고 초등학교 시절을 상기하면서 “공부 못하는 사람이 남에게 가방 심부름시키는 거야.” 농담 삼아 한마디를 했는데 이 말이 그만 아내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고 말았다. “그래요. 그래서 나는 공부를 못했어요.” 하고 발끈하니 집안 분위기가 갑작스럽게 냉랭해졌다.

가정예배가 끝난 뒤 아이들은 모두 외출하고, 나는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공부방으로 들어갔다. 방에 갇혀 나오지도 못하고 책을 읽다가 컴퓨터에 붙어 앉아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모처럼의 휴일이어서 가족들과 즐겁게 지내려던 것이 그만 아내의 마음을 언짢게 만들고, 아이들까지 밖으로 몰아냈으니 나도 속이 상했다. 오전 내내 주방을 들락거리던 아내가 점심상을 차려놓곤 혼자 밥을 먹으라며 안방으로 들어가더니 피곤하다고 자리를 펴고 누웠다. 밥맛이 없어 자기는 점심을 먹지 않겠다는 것이다. 나는 미안한 마음이 들어 밥을 억지로 반 그릇 정도 먹고 이내 자리를 떴다.

밥상을 치우러 나온 아내가 “조금 먹을 것이면 미리 덜어 먹든지, 먹다가 남기면 어떻게 하느냐?”라고 잔소리를 했다. 나는 슬그머니 부아가 일었으나 대꾸하면 언성이 높아질 것 같아 못 들은 척 컴퓨터 앞에 다시 앉았다. 한동안 시간이 흐른 뒤 아내가 소리를 지르면서 옥상으로 뛰어 올라간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쫓아가 보니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아내는 빨랫줄에 널어뒀던 옷가지들을 걷으면서 “비가 오는 소리도 못 들었느냐?”고 쏘아붙였다. 방에서 컴퓨터에 매달려 있다 보니 빗소리를 듣지 못했기에 아내의 투정이 내 마음을 더욱 불편하게 만들었다.

빨래를 걷어 방에다 넌 뒤 부엌으로 들어간 아내는 한동안 무엇을 하는지 쿵쿵거리면서 기름 냄새를 피웠다. 그리고는 공부방으로 부침개를 들고 들어오면서 먹으란다. 자기는 점심도 먹지 않았는데, 미안한 마음이 들어 그랬는지 남편을 위해 간식을 준비했다. 나를 생각해 주는 아내의 마음씨가 고맙고, 그녀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던 나의 언행이 부끄럽기도 했다. 섭섭했던 마음이 눈 녹듯 사라지면서 당신이 먼저 먹으면 나도 먹겠다면서 아내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그러자 아내는 부엌일을 끝내고 오겠다면서 방을 나갔다.

저녁에 아이들이 돌아오자 낮 동안 있었던 얘기를 들려주면서 온 식구가 한바탕 웃었다. 아내의 얼굴에서도 미소가 돌았고, 나도 미안한 마음에 아내의 손을 꼭 잡아줬다. 낮에 있었던 일을 되돌아보면서 초등학교 시절 함께 뛰놀던 친구들의 모습을 떠올려 봤다. 우리들의 짱이었던 Y를 포함해 유명(幽明)을 달리한 친구들을 헤아리기엔 다섯 손가락이 부족했다. 오늘은 나의 말실수로 아내의 심기도 불편했고, 아이들과 나 자신도 견디기 힘든 하루였으나, 아내의 슬기로 저녁에는 말끔히 갠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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