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호 스피치리더십연구소 대표

이창호

한 기업의 대표자는 단지 기업의 경제적 이익 추구에만 일익을 담당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 기업을 일으키고 성장·유지시키기 위해, 그리고 사회의 이익을 염두에 두고 기업의 가장 윗사람으로서 본을 보이며 구성원의 지도자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책임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기업 총수가 세금 탈루, 관세법 위반, 공금횡령 등 갖가지 법을 어긴 혐의로 구속돼 옥고를 치르는가 하면 그 가족들이 직원과 하청업체에게 갑질과 폭행을 일삼다 사회적 비난을 받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진정한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를 실천하는 재벌을 보기 원하는 건 기업의 구성원뿐만 아니라 모든 국민들의 바람으로, 고(故) 유일한(柳一韓) 박사의 일대기를 엿보며 기업인들이 지향해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어떠한 자세로 기업을 경영해야 하는지 생각해 보고자 한다.

평양에서 태어난 유 박사는 상인이었던 아버지 유기연과 어머니 김확실(김기복) 사이의 9남매 중 맏이로 태어났다. 그는 미국에서 학비를 벌며 힘겹게 학업을 마치고 전자회사 사원을 잠시 거쳐 1922년 숙주나물 취급회사인 라초이식품주식회사를 설립, 3년 동안 50여만 달러라는 큰 수익을 올렸다. 그리고 1926년 12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유한양행을 설립했다.

그는 사회적으로 해가 되는 일은 기업에 아무리 큰 이익이 되더라도 주저 없이 제안을 거절했다. 일제강점기 만주에서 헤로인, 모르핀, 아편이나 암페타민 계열인 마약류 거래가 많았는데 이를 보고 영업담당이었던 전항섭은 유 박사에게 마약류를 판매할 것을 제안했다. 하지만 그는 민족에 해가 될 것이라며 일언지하에 거절했고, 전항섭은 그 즉시 해고당할 뻔했지만 사죄한 뒤 간신히 영업 담당에 머물게 됐다.

광복 후 유 박사는 미국에서 돌아와 유한양행을 재정비한 후 성장을 거듭하여 우수약품생산업체로서의 자리를 견고히 했으며 자신의 이익에 앞서 기업의 안녕을 추구한 기업가로서의 여러 면모를 보여줬다.

그는 우리나라 최초로 종업원지주제를 실시했을 뿐만 아니라 1969년 기업 제일선에서 은퇴하고 혈연관계가 전혀 없는 조권순에게 사장직을 물려줘 기업의 전문경영인 등용의 길을 열었는데 당시 재계에서는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의 아들 유일선과 동생 유특한(유유제약 창업자)은 회사에서 퇴직 후 유 박사를 상대로 ‘퇴직금 반환 소송’을 벌여 큰 이슈가 되기도 했다. 본인들이 받은 퇴직금이 너무 많다며 회사에 전액 반환소송을 건 일이었다. 이 때문에 이 소송을 맡은 판사가 “세상에 이런 집안이 어디 있나?”라고 아연실색했다는 후문이다.

현재 우리나라 기업경영 일선에 있는 기업인들은 유 박사의 이야기를 통해 요즘 시대에 필요한 애국애족이 곁들여진 기업경영철학을 본받아야 한다.

첫째, 그는 ‘정직’을 경영 철학으로 삼았다. 1928년 7월 유한양행의 첫 신문 광고는 그의 정직한 기업경영철학이 그대로 담겨 있다. 당시에는 대부분의 제약회사들이 타사 제품 비방과 만병통치약인 것처럼 허위광고를 일삼았지만 유한양행은 이름과 용도, 의학박사와 약제사의 이름을 실어 제품의 신뢰도를 증명했다.

둘째,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는 본을 보였다. 그는 생을 마감하면서 “손녀에게는 대학 졸업 시까지 학자금으로 1만 달러를 주고, 딸에게는 유한공고 안에 있는 묘소와 주변 땅 5000평을 물려주며, 그 땅을 유한동산으로 꾸미고, 그 동산에는 학생들이 마음대로 드나들도록 하라. 또 내 명의의 주식은 전부 한국 사회 및 교육 기금에 기증하고, 아내는 딸이 잘 돌보아주기 바라며 아들에게는 대학까지 졸업시켰으니 앞으로는 자립해 살아가거라”는 유언을 기록으로 남겼다. 자신의 모든 소유를 자식들에게 대물림하지 않고 사회에 고스란히 환원한 것이다.

셋째, 나라를 사랑한 독립운동가이자 기업인이었다. 그는 독립군을 기르기 위해 만든 헤이스팅스 소년병 학교에 입학하고 주경야독하며 학교에 다녔다. 또한 3·1운동 직후 서재필이 소집한 제1차 한인의회에 참여하는 등 독립운동에 큰 관심을 가졌다. 유학생으로 젊은 시절을 미국에서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언제나 조국을 사랑했다.

개인의 이익을 추구한 것이 아닌 민족과 사회를 위해 기업인·교육가·사회사업가·독립운동가로 시대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나라에 헌신한 참된 리더, 유일한 박사의 정신이 필요한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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