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와 사랑에 살던 소프라노

쓸쓸히 죽어간 세기의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Maria Callas)는 천상의 목소리와 연기력으로 오페라 무대의 프리 마돈나였다. 아직까지 그와 같은 배우는 세상에 오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스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그는 굵은 쇳소리가 나는 목소리를 극복하고 공연계의 히로인(Heroine)이 되어갔다. 그러나 몸무게는 90kg를 찍었다.

뚱보 공주를 대중은 싫어했고 그는 오드리 헵번(Audrey Hepburn)을 롤 모델로 삼고 36kg을 감량한다. 최고의 성형은 다이어트라고 그의 살 속에 묻혀있던 미모는 세상을 놀라게 했다.

이탈리아 밀라노 라스칼라(La Scala)의 프리 마돈나는 명실공히 세계 최고가 됐고 그의 후원자였던 죠반니 바티스타 메네기니(Behind the Curtain)와 결혼하며 인생의 황금기를 보냈다.

그러다 우연히 찾은 선상파티에서 선박왕 이름에 걸맞게도 아리스토텔레스 오나시스(Aristotle Socrates Onassis)를 만났다. 마리아의 목소리에 반한 선박왕은 가진 모든 돈을 써서라도 마리아 한사람에게 구애하기로 마음먹었다.

흔들리지 않을 것 같더니 마리아는 집을 나와 이혼을 하기위해 국적도 바꿨다. 그러나 음악과 가정을 포기하며 그렇게 이어간 사랑은 겨우 9년 만에 끝났다. 오나시스의 마음이 또 다른 여인에게 향했기 때문이다.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던 존 F. 케네디(John F. Kennedy) 대통령의 미망인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Jacqueline Kennedy Onassis)였다.

오나시스의 결혼으로 마리아는 모든 것을 잃었고 다시 음악으로 돌아오려 했으나 열흘 붉은 꽃은 없었다. 목소리가 더 이상 전성기의 그것이 아니었다. 얼마 후 그는 사망했고 마리아는 모든 활동을 접고 칩거했다. 이제나 저제나 마리아의 목소리를 기다리던 사람들은 916일 그의 소식을 듣게 됐다. 바로 부고(訃告)였다.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았던, 불꽃같은 마리아 칼라스였다. 그의 마지막을 지킨 건 그의 전 남편 메네기니였다.

·사진=김기옥 님(협동조합 사유담(史遊談))

정리=이준섭 기자 ljs@ggilbo.com

저작권자 © 금강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