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지 무색하게 현장 혼란만 가중
하반기 숙려 안건 두고 걱정 태산
교육현장선 “개선해야” 목소리도

정책 추진 전 숙려기간을 운영해 국민 의견을 수렴하겠다는 정책숙려제의 당초 취지가 무색하게도 현장의 혼란만 가중시키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첫 번째 안건으로 추진한 학교생활기록부 신뢰도 제고 방안 결론이 결국 ‘용두사미’로 끝날 것으로 예상됨에 따른 것인데 지역에서도 정책숙려제에 대한 개선 필요성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시민참여단이 교육부에 전달한 정책숙려제 1호 안건인 학생부 개선 권고안의 밑그림이 나왔다. 지난 12일 정부세종청사에서 발표된 숙의 결과에 따르면 시민참여단은 특정 학생에게 몰아주기 등의 부작용을 일으킨다는 지적을 받아온 수상경력의 경우 기재하되 구체적 운영 가이드라인을 추가 마련하는 것으로 의견을 모았고 자율동아리 활동의 현행 유지, 봉사활동 실적은 교내·외 활동 모두 기재, 교과 담당 교사가 적는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은 재능이나 특기가 관찰되는 학생에 대해 기재하는 등으로 권고했다. 큰 틀에서는 기재항목은 기존보다 축소되나 세부적으로 보면 현행 제도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일각에선 ‘용두사미’로 끝났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교육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교육부가 권고 사항을 발표 후 성명을 내고 “학생부 기록 개선은 매우 전문적인 영역으로 이 문제가 정책숙려제 대상이 된 것은 부적절했다”며 “짧은 숙의과정을 통해 개선안을 마련하겠다는 잘못된 결정이 정책 목표와 방향을 상실한 권고안 도출로 이어졌다”고 비판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도 “학생부 신뢰도 향상을 위한 근본적인 개선보다 교육부 개선(안)을 중심으로 항목 변경에만 치우친 점이 아쉽다”며 “숙려제의 취지는 타당하더라도 현행처럼 사안에 대한 이해관계 집단 의견을 경연하듯 보여주고 시민정책참여단이 평가토록 하는 것은 교육부의 책임 약화를 초래하므로 개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역에서도 앞으로 정책숙려제 등 공론화 작업을 통해 제도 방향을 결정할 일이 2022학년도 대입제도 개편을 비롯해 유치원 방과 후 영어교육, 학교폭력 관련 제도 개선 등 줄줄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지금처럼 ‘차라리 안하느니만 못 한’ 정책숙려제가 먼저 개선돼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형국이다. 중학교 2학년 자녀를 둔 학부모 김경숙(42·대전 대덕구) 씨는 “국민 의견을 수렴하겠다는 것을 잘못됐다고 할 순 없지만 생업으로 바쁜 학부모들이 입시 당사자인 학생들을 따라갈 수 있겠냐”고 반문하며 “지금처럼 단 두 번의 짧은 숙의로 결정해서 나온 결과가 큰 반응을 얻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책숙려제의 보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귀띔했다.

교사들도 정책숙려제 개선 필요성에 공감하는 모양새다. 실제 정책숙려제 운영과정에서 일부 문제점이 드러나면서 제대로 된 의사결정을 할 수 없었다는 판단에서다. 지역 A 고등학교 교사 정 모 씨는 “이번에 학생부 개선이 정책숙려제 안건으로 선정되는 과정부터 교육계 이해관계자들 사이에서 참여 여부를 두고 논란이 있었는데 향후 이런 방식으로 결정될 사안이 있는 만큼 앞으로는 충분한 일정을 확보하든지 제대로 검증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됐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이준섭 기자 ljs@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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