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균 대전효문화진흥원 효문화연구사업단 단장

 요즘 우리가 말하는 선거제도와 민주주의는 모두 동양적 의미와는 거리가 있다. 선거의 유래는 2000년 전 한(漢)나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방관리가 유능한 인재를 뽑아(選) 중앙에 추천하여 임용(擧)하는 것을 선거(選擧)라고 했다. 오늘날 선거와는 많이 다르다. 민주(民主) 역시도 주권재민(主權在民)과는 질적으로 다른 ‘백성의 주인’(民之主)인 천자(天子)를 가리켰다. ‘서경’에 나오는 것으로 보아 모름지기 3000년 전 일이다. 글자만을 놓고 본다면 동양의 선거, 민주에 대한 개념은 서양보다 유구한 셈이다.

지금이야 정치지망생들의 자진 출마로 선거가 이뤄지지만, 옛날에는 지방관리들의 추천을 선거라고 했다. 출마(出馬)라 함도 직역하면 ‘말을 내온다’는 뜻이니 우리가 생각하는 출마의 뜻과는 역시 달랐다. 하지만 말을 탄다는 것은 임지로 부임할 때, 전쟁터에 나갈 때 등 특별한 목적과 이유가 있을 때였다. 오늘날 시민 사회를 위해 헌신하겠다는 선거 출마의 의지와 맥락적으로 통한다고 할 것이다.

지방관리가 인재를 뽑아 추천할 때에는 일정한 자격요건을 갖춘 자를 대상으로 했다. 능력도 뛰어나야 하지만 품성도 남달라야 했다. 인륜을 강조했던 송(宋)나라 때에는 효자가 많이 추천되었다. 효자를 관리로 추천하는 풍토가 생기자 가짜 효자들도 속출했다. 할고단지(割股斷指)하는 젊은이, 오래전 돌아가신 부모님 묘소 앞에 묘막 짓고 삼년상 치르는 사람 등 출세에 눈먼 자들의 가짜 효행이 백태를 이뤘다. 형평성을 잃은 지방관리의 추천권도 심각한 부정부패를 낳았다. 결국 선거는 폐단만 양산하는 제도가 되고 말았다. 과거시험이 관리 선발의 가장 객관적 기준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관리로 선발되면 고단한 나날을 보내야 했다. 지금이야 명절과 공휴일은 물론 닷새 일하고 이틀 쉬는 제도가 정착되었지만, 옛날의 관리들은 휴일은커녕 조회(朝會)가 있는 날에는 인시(寅時, 오전 3~5시)에, 평시에는 묘시(卯時, 오전 5~7시)에 출근하여, 유시(酉時, 오후 5~7시)에 퇴근했다. 해 뜨기 전에 나갔다가 해지는 시간에 돌아왔으니, 꼬박 12시간 이상을 근무한 셈이다. 거기다 처음엔 봉급도 제대로 책정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경쟁적으로 관리가 되려고 혈안이 되었다. 거기엔 이유가 있다. 관리가 되면 권력과 명예는 물론 재부까지도 덩달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구태여 봉급을 책정하지 않아도 되는 까닭이다. 말단 관리였던 아전들의 경우 더욱 심했다. 무급제도는 적당히 알아서 챙기라는 정책적 배려(?)였다. 예부터 정경유착이 심화될 수밖에 없는 풍토와 탐관오리 양산의 제도적 문제점을 여기서 찾게 된다.

이제 민선7기 새로운 지방정부가 시작됐다. 전통적 선거(추천)가 아닌 현대적 선거제도에 의해 그야말로 선량(選良)들이 선출되었다. ‘백성의 주인’ 천자가 선택한 사람들이 아닌 ‘권력의 주인’ 백성들이 선택한 대표들이다. 따라서 선택한 사람과 선택받은 사람의 올바른 관계 정립은 바른 정치의 가장 중요한 요체가 된다.

순자는 “임금은 배이고 서민은 물이다.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고 배를 엎기도 한다”고 했다. 지도자와 백성의 관계를 적절히 비유한 말이다. 배는 조용한 물 위를 순항하지만, 조용한 물이 어느 순간 성난 파도로 돌변한다면 배는 뒤집힐 수도 있다. 백성들에 의해 선출된 이들이 언제 낙마(落馬)할지 모른다. 늘 조심해야 하는 이유이다.

허태정 대전시장을 비롯한 여러 단체장들이 화려한 취임식장 대신 힘들고 어려운 삶의 현장을 찾는 행보가 눈에 띈다. 수많은 외빈들이 참석하는 취임식도 사라졌다. 민심을 천심으로 여기는 지도자들의 모습이라 생각한다. 또 이것은 사랑(愛)과 공경(敬)을 지도자의 핵심 덕목으로 지적한 ‘효경’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이들이다. 효문화진흥의 중심도시 대전은 물론 대한민국이 추구해야 할 가치와 철학도 여기에 있다. 사랑과 공경의 효문화, 거기에 인류의 보편적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금강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