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 속 ‘온열질환’ 엎고 일하는 건설근로자
무늬만 휴게실…실제 이용 힘들고 ‘눈칫밥’ 만 먹어
강화한다는 안전조치…체감도는 ‘제로’

최근 불볕더위는 출구 없는 한증막을 방불케 한다. 올여름 장마가 예년보다 보름정도 일찍 물러나서인지 그 맹위가 대단하다. 연일 이어지는 폭염 속 건강관리를 위해선 야외활동을 자제해야 하지만 고용현장이 건물 밖인 야외근로자들에게는 꿈같은 이야기다. 그들에게 더위는 ‘피하는 것이 아닌 견뎌야만 하는 대상’이기 때문이다.

19일 대전 동구의 한 아파트 건설 현장 주변에서 건설근로자 한경진 씨와 김창두 씨를 만날 수 있었다. 푹푹 찌는 날씨에도 이들은 긴 옷과 바지, 쿨워머, 쿨토시 등을 온 몸에 감싸고 있었다. 이들이 보기만 해도 더워 보이는 겉옷들을 감싸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한 씨는 “건설근로자들은 사계절 내내 속살이 보이는 옷을 입기가 쉽지 않다. 자재로부터 피부를 보호하기 위함도 있지만 특히 여름에는 자외선에 오래 노출되면 화상까지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순되게도 온 몸을 감싸는 겉옷들이 더위를 증폭시켜 온열질환을 야기시키기도 한다. 이러나 저러나 죽을 맛이다”라고 고충을 토로했다.

한 씨와 김 씨는 여름철 건설현장에서도 유독 덥기로 소문난 철근파트에서 일을 하고 있다. 철근파트 현장은 사방이 자외선에 노출 돼 있고 바닥엔 ‘테크’라고 불리는 은색 철판이 깔려 있어 일반 도로보다 더위가 배로 느껴진다고 했다.

한 씨는 “제가 철근 팀인데 결속을 하려고 하면 안전모 끝에서 땀이 ‘주르륵’ 흘러요. 숨 쉴 때마다 땀이 입으로 들어가고 매일 같이 상반신이 땀으로 축축하죠. 이렇게 더위를 참고 퇴근하고 나면 머리가 ‘핑’ 돌죠. 그렇게 아픈지도 모르고 쓰러지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니랍니다”라고 말했다.

수분과 당을 섭취하고 잠시나마 열을 식힐 수 있는 휴게실은 무늬일 뿐, 한 번 이용하기가 쉽지 않다는 게 이들의 하소연이다. 휴식시간도 오전 9시~9시 30분, 오후 3시~3시 30분 하루 두 번있지만 이마저도 잘 지켜지지 않는다고 했다.

김 씨는 “아침 조회시간에 쉬엄쉬엄하라고는 하지만 막상 현장이 돌아가기 시작하면 각 팀에게 가하는 압박이 상당하다. 현장과 휴게실 간의 거리가 멀기도 하고 막상 이용하고 나면 ‘놀러왔냐, 일하러 온 사람 맞느냐’ 는 식의 눈칫밥을 주니까 휴게실이 있어봐야 무의미 하다. 휴식시간도 30분 씩 하루 두번 있지만 사실상 10~15분정도 쉬는 게 고작”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야외근로자의 온열질환 산업재해를 막고자 안전조치를 강화한다고 하지만 현장 근로자들은 공감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김 씨는 “정부의 안전조치는 현장에선 전혀 체감되지 않고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사람도 태반이다. 안전조치 지도에 관한 공문이 오는 걸로 알지만 50명이 1시간만 쉬어도 50시간, 하루 10명의 공수(한 사람의 하루 일량)를 날린다고 생각하는지 폭염에 대한 안전조치 개선 의지가 안 보인다. 이번 주만 해도 팀에서 두 명이 더위로 쓰러졌고 한 달 동안은 일을 못할텐데 그 만큼 줄어든 벌이는 또 어떻게 채우겠냐. 이러한 고용환경을 반영해 줘 보다 실효성있는 정책이 나왔으면 한다”고 짙게 호소했다.

정재인 기자 jji@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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