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진리, 그리스의 맛을 찾아서

파란 올리브 줄까, 빨간 올리브 줄까

걱정 말아요. 스파르타에선 두개 다 무료니까요.”

악명 높은 과거를 털어내려는 건지 스파르타 타베르나(Taverna, 마을식당)’는 밑반찬을 무료로 준다. 물도 무료다. 유럽은 이런 곳이 아니었는데 가는 곳마다 우리가 기본이라 여겼던 모든 게 돈이었다. 휴게소에서 화장실 사용료를 받을 땐 눈물이 났고 맥주보다 물이 더 비쌀 때는 술을 배우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집안을 말아먹고 다닌 게 물 값이 아깝다니’. 웃기지도 않지만 이런 생각지 못한 소비가 아까워 먹고 싸지도 않다가 영양실조와 변비, 그리고 항문에 큰 문제가 생겼다. 수술도 못한다. 수술한다고 잡아 놓은 10일은 고새를 못 참고 여행으로 탕 진했다. 난 그렇게 질병 속에 살고 있다.

올리브가 무료라니. 무한 감동의 스파르타 만세. 그린올리브는 지역마다 독특한 지방색을 보인다. 우리로 치면 김치와 같아서 올리브 맛을 보면 그 집안 음식솜씨를 알 수 있다.

올리브 센스

올리브는 갓 따면 초록색이다. 그리고 빨갛게 익었다가 검은 색이 된다. 아무래도 그린이 비싸고 블랙이 싸다. 그래서 그런지 수입 단가가 싼 블랙 올리브 맛에 익숙해져 있다. 피자 위에 올라간 올리브가 블랙올리브를 자른 것이다.

그린올리브에 빠지면 블랙은 손도 안 댄다. 외국생활 오래 하다보면 김치가 그렇게도 생각나는데 이를 대신해주는 게 올리브다. 올리브만 입에 맞으면 그때부턴 외국생활이 여유로워진다. 은근 중독성 강한 올리브였다. 나는 뷔페에 가면 스테이크 줄도, 대게 줄도, 초밥 줄도 안 선다. 올리브만 퍼먹다 온다.

그린올리브는 젊고 레드올리브는 나이 들었다는 설명을 이렇게 길게 말하는데 그리스는 한방에 끝냈다. 재미있는 상징의 나라였다. 이것이 그리스의 매너, 그리고 위트였다.

그리스 요리 만드는 법

올리브유를 부어주세요.”

많이 부었다 싶으면 더 넣어야 한다. 간이 안 돼 있다면 소금을 넣으면 된다. 사탕 부숴놓은 것 같은 소금은 신기하게 달달함이 있다.

오레가노(Oregano)를 아는가? 모든 느끼함을 잠재우는 신비의 가루다. 피자에 뿌려먹으면 냉동피자가 이태리의 갓 구운 피자로 환골탈태한다. 그리스 쇼핑 필수항목이다. 레몬은 육류와 샐러드에 뿌려먹으면 된다. 담장에서 갓 따온 레몬은 풍미 작렬이다. 벌초한 후 진향 풀 향기라 할까? 신선함이 그리스 음식의 맛이었다. 어쩌면 급하게 죽어간 풀들의 낭자한 핏빛향기일 수 있는데 그 향기가 좋다고 하는 건 뭔가 잔인함과 슬픔이 따라온다.

태생부터 그리스 요리에 조리는 없다. 그냥 흙만 털어 먹는다. 그리고 4종 세트는 언제나 무료로 제공된다.

여행을 여행답게 하는 친구

사실 피라미드, 파르테논, 런던탑, 만리장성, 노트르담 등은 기대치가 어마무시해서 막상 마주 섰을 때 기대만큼 감동을 못 줄때가 많다. 하여 적당한 순간, 적당한 상황일 때 그 장소에 놓이는 것은 삼대의 적선이 필요하다.

그러나 의외의 대박은 먹거리에서 온다. 어떻게 보면 여행은 혀끝에서 시작된다. 이번 여행에서 나는 마카다미아를 만났다. 대한항공에서 비행기를 후진시킨 문제의 땅콩이 바로 마카다미아(Macadamia)였다.

난 마카다미아 까놓은 것만 먹어봤지 땅에서 캐는지, 나무에서 따는지는 알지 못했다. 그냥 깡통으로 먹어봤다. 그러다 이번에 난생 처음 봤다. 우황청심환 둥근 케이스만한 동그란 열매 속에 엄지손톱보다 작은 통통한 열매가 마카다미아였다. 껍질이 너무나 두꺼워서 먹을 수가 없으니 착실하게 드릴로 틈을 내줬다.

이틈에 칼을 넣고, 돌리고, 흔들고 했지만 두꺼운 마카다미아는 속을 안내줬다. 그래서 한참을 고민하다 다시 보니 쇠로 된 연장이 들어있었다. 그 연장을 홈에 넣고 열쇠 돌리듯 돌려버리면 아작하고 갈라진다. 신기해라. 그러면 촉촉한 마카다미아가 입에 쏙들어와 고소한 맛을 볼 수 있다.

비행기를 돌린 맛. 맞다. 신기해라. 여행보다 마카다미아가 더 신기했다. 그러나 잘못 돌리면 입구만 조금 깨지고 먹을 방법이 없다. 서방 없이 못 먹을 마카다미아였다. 여행은 혀끝에서 시작된다.

·사진=김기옥 님(협동조합 사유담(史遊談))

정리=이준섭 기자 ljs@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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