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맞은 아이들의 상반된 풍경
빈부격차 인한 상대적 박탈감 고조

#1. 방학은 누구에게도 똑같이 주어진다. 그러나 어떤 방학인지는 개인마다 다르다. 10살 지성이(가명)에게 방학은 서글프다. 끼니 걱정 때문이다. 밥 때가 되면 지성이는 집 근처 편의점을 가곤 한다. 손에 집어든건 컵라면과 삼각김밥. 가끔 도시락을 먹기도 한다. 새삼 엄마의 따뜻한 밥이 그립다.

#2. 11살 민기(가명)는 방학을 손꼽아 기다린다. 때마다 부모님과 함께 해외 여행을 하기 때문이다. 1학년때부터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에 시원한 곳, 따뜻한 곳으로 여행을 떠났다. 민기 부모님은 아이에게 많은 것들을 보여주고 싶어 현장 체험 학습의 일환으로 이번 방학에도 가족여행을 준비하고 있다.

방학하면 떠오르는 키워드는 ‘신나고 즐겁다’가 아닐까 싶다. 과거형일지 모르지만 적어도 초등학생들에게 방학은 여전히 설렘의 시간이다. 다만 부모의 경제력이 방학의 질을 좌우하는 세태는 뒷맛이 개운치 않다. ▶관련기사 3면

지성이와 민기는 각각 대전지역 초등학교에 재학 중이다. 결식아동 지성이와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가정인 민기의 방학은 결이 다르다. 결식아동이라고 즐겁지 않으라는 법은 없지만 결코 평범치는 않다. 결식아동들에게 방학은 학기 중 보다 더 서럽다. 학교 급식이 끊겨 밥을 찾아 다녀야 하는 까닭이다. 같이 먹을 친구도 마당히 없다. 밥 먹는 순간엔 차라리 방학이 나쁘다고 생각한다. 비단 지성이 만은 아니다.

대전 동구만 해도 지성이와 같은 방학 중 결식아동이 1660여명에 달한다. 방학이면 홀로 남겨지는 학생들은 하루 4000원 상당의 쿠폰을 받아 편의점이나 분식집에서 끼니를 해결한다. 어린 나이 혼밥을 바라보는 시선도 부담스럽다. 이래저래 방학은 어린 마음에 생채기를 내곤 한다.

지성이가 재학중인 A초등학교 교사는 “우리 반 아이들만 해도 대부분이 맞벌이 가정이고 30% 정도는 결식아동으로 추정된다”며 “학기 중에 보면 급식 시간에 유난히 밥을 많이 먹는 친구가 있는데 아침과 저녁을 먹지 못하기 때문인 것 같다. 방학이면 끼니마저 거를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고 걱정했다.

누구나 여유로운 것은 아니지만 민기처럼 방학이 그지 없이 반가운 아이들도 있다. 대전에선 서구와 유성구를 중심으로 일부 학교 재학생들이 방학 중 해외 체험학습을 다니는데 그 수가 적지 않다. 이들은 방학을 맞아 부족한 공부를 하거나 해외나 국내 곳곳을 둘러보며 견문을 넓히는 ‘방학다운 방학’을 누린다. 민기가 재학중인 B초등학교 교사는 “방학이면 현장체험학습이라는 명목으로 해외여행을 가지 않는 아이들이 없을 정도다. 개학 후 방학 중 즐거웠던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상당수가 부모님과 여행을 다녀온 일을 꼽는다. 오래된 일이다”며 “나도 이번 방학에 아이들과 함께 해외여행을 계획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대전 내에서도 방학 중 결식아동이 집중된 지역과 방학 중 해외 체험학습이 활발한 지역이 뚜렷이 구분된다. 지역적 특성이 반영된 사례지만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유전여행 무전결식(有錢旅行 無錢缺食)’을 사회 문제로도 볼 수 있다. 일각에서는 저소득층 아이들을 위한 보다 세밀한 방학 지원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유상영 기자 you@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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