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30여 년 전만 해도 1년 중 가장 고통스러운 계절은 겨울이었다. 모든 것이 얼어붙고 혹독한 추위가 상존하는 겨울은 생명을 위협할 정도였다. 모두가 가난했던 과거에는 겨울나기는 특히 서민들에게 죽음의 공포로 다가오기도 했다.

겨울을 맞이하기 전에 각 가정은 연탄이나 장작을 비축해야 하고 겨우내 먹을 김치를 장만하기 위해 김장을 해야 했다. 연탄을 준비하고 김장을 마련하는 것은 웬만한 가정에 적지 않은 부담이었다. 연탄과 김장은 최소한의 준비였을 뿐 그걸 장만해두었다고 겨울을 쉽게 보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연탄이나 장작 등 연료를 준비하지 못해 겨울이면 동사하는 사람이 부지기수로 많았다. 연탄가스에 질식해 목숨을 잃거나 불구가 되는 경우도 허다하게 많았다. 이래저래 겨울은 공포의 계절이었다.
한 세대의 시간이 흐른 지금의 상황은 그 때와 비교해 전혀 달라졌다.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겨울철 기온이 과거에 비해 크게 상승해 고통지수가 낮아졌다. 에너지 복지정책이 확대돼 추위로 인한 동사자는 거의 자취를 감추게 됐다.

겨울의 고통지수가 낮아진 반면 여름의 고통지수는 더욱 커졌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여름철 온도는 더욱 올랐고, 에어컨 설치가 늘어나며 실외기에서 뿜어내는 열기는 서민들의 호흡을 옥죄고 있다. 자동차 배기가스도 여름철 고통지수를 높이는 요인이 되고 있다.

더위를 막아낼 여건이 못 되는 불량주택에 거주하는 이들의 경우, 폭염이 이어지는 여름철이 겨울보다 한결 보내기 어려운 계절이 됐다. 저소득층 가정의 어린이나 노약자 등은 펄펄 끓는 여름 더위에 무방비일 수밖에 없다.

사람 체온을 넘어서는 가마솥더위에도 저소득층들은 폐지를 구하러 거리를 누벼야 하는 처지이다. 폐지 값이 1㎏에 180원이던 것이 50원까지 떨어져 실상 하루 종일 모아도 5000원을 벌지 못하지만 그걸 포기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여름방학이 되면 온 가족이 더위를 피해 해외여행에 나서는 가정이 많지만 저소득층에게는 꿈과 같은 이야기일 뿐이다. 과거에는 겨울에 빈부의 차이에 의한 고통지수 격차가 가장 크게 벌어졌다면 요즘에는 여름철이 더욱 극명하다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의 이웃돕기는 관행처럼 연말과 겨울에 집중돼 있다. 시대가 바뀌었지만 여전히 겨울나기에만 관심을 보일 뿐 여름나기에는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의식도 바뀌고 정책도 바뀌어 취약계층의 여름나기에 각별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 겨울철에 집중된 이웃돕기 행사도 여름과 겨울로 양분해 실시해야 한다. 이 무더운 여름날을 최악의 고통 속에서 보내는 이웃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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