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 모드와는 별개 강행군 속 찜통더위 반영

35도를 웃도는 찜통더위가 찾아온 지난 20일 충남 한 예비군 훈련장. 오전이랄것도 없이 땀이 줄줄 흐른다. 삼삼오오 모인 예비군들의 얼굴에 주름이 잔뜩이다.

최근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 이후 평화 모드가 확산되고 있지만 예비군 훈련장 분위기는 이전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오전 9시 본격적인 훈련시간이 됐지만 한참이 지나서야 예비군들은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안으로 들어서자 조교들이 낡은 총을 한 자루씩 나눠줬다. '선배님들 날씨가 매우 더운 관계로 야외훈련을 간소화하도록 하겠습니다. 훈련 과정마다 교관이 평가해 성적이 우수한 분들은 조기 퇴소합니다.' 검은 베레모를 쓴 조교가 목청껏 소리를 높여 조기퇴소제도에 대해 설명을 했지만 이를 귀담아 듣는 예비군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오후 일정은 외부 초청 인사의 안보교육으로 시작했다. 예비역 장군 출신인 강사는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이 열려 화해모드로 보이겠지만 여전히 북한의 위협·도발은 끝나지 않았습니다”라며 “우리나라가 분단국가라는 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 중심에는 예비역 여러분이 서있다는 걸 명심하십시오”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더위에 지친 예비군들은 채 10분을 집중하기 힘들어보였다. 교육관 안에는 낡은 스피커를 타고 나오는 강사의 목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려 퍼졌다. 강단 앞에 붉은색으로 적힌 '안보불감증'이라는 단어를 실감케 했다.

이어진 수색·정찰 훈련으로 본격적인 야외훈련이 진행됐다. 불볕 더위로 검문·검색과 구급법, 화생방 등 일부 훈련들은 생략됐다. 지뢰제거와 각개전투 등 각 훈련장마다 배치된 조교들은 인솔하는데 진땀을 빼야했다. 이동할 때마다 뒤쳐지는 예비군들을 독려하고, 불만 섞인 목소리를 계속 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적극적으로 훈련에 참여한 예비군들이 그리 많지 않은 것은 아쉬웠다.

오후 4시경 예정된 훈련이 끝나자 예비군들은 재빠르게 집합해 집에 갈 채비를 마쳤다. 예비군들도 이때만큼은 현역병 못지않게 재빠르게 움직인다. 순식간에 소총과 장구류를 반납하고 교통비를 받아 바지 주머니에 찔러 넣은 예비군들은 앞 다퉈 출입문을 빠져나갔다. 집까지 앉아서 가기 위한 버스 자리 쟁탈전이 벌어진 것이다. “지금 이 상태에서는 대통령이 와도 예비군을 통솔하기 불가능할 것”이라는 한 조교의 푸념 섞인 농담이 와 닿는 순간이었다. 아직은 분단국가, 아무리 더워도, 아무리 현역 시절의 군기와 패기는 빠져나갔어도, 예비군 훈련은 계속된다. 그것이 평화 모드 위 2018년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송승기 기자 ssk@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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