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된 소통에서 주민참여 확산
분권과 참여, 두 수레바퀴 조화이뤄
지역 발전의 새로운 패러다임 도출
사람과 도시재생에 투자 역량 집중

민선 7기, 대전 자치구 구청장들이 본격적인 행보에 나섰다. 구정 인수위원회를 통해 구정의 방향을 설정하고 공약을 가다듬었다. 그러나 취임은 순탄치 않았다. 태풍의 북상으로 취임식을 일제히 취소한 채 재난현장을 찾아야 했고 장마가 끝나자마자 폭염이 지속되면서 지역민의 안전을 살펴야 했다. 호된 신고식을 치른 셈이다. 바쁜 일과 속에서 민선 7기, 저마다의 구정 비전 달성을 위해 달려가고 있는 구청장들을 만나 민선 7기 대전 기초지자체의 미래 모습을 들여다봤다.

6·13 지방선거에서 대전시장선거 판세 못지않은 뜨거운 관심사가 있었다. 바로 대덕구청장선거였다.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의 2파전 진검승부에 성(性) 대결 양상까지 겹치면서 치열한 접전이 펼쳐졌다. 설전도 오갔다. ‘굴러온 돌’과 ‘박힌 돌’ 논쟁이었다. 결국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낸 셈이 됐는데 사실 선거에서 승리한 박정현(53) 구청장의 삶의 터전은 대덕이었다. 청년 박정현의 첫 일터는 대화동공부방이었고 신혼살림이 차려진 곳은 대덕구청 뒤 오정동 골목이었다. 읍내동 현대아파트에서 첫 아이를 길렀고 계족산·대청호와 함께한 시민·환경운동이 24년이다. 물론 박 청장이 굴러온 돌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변화와 혁신의 아이콘, 박 청장이 만들어낼 대덕의 변화가 어떻게 나타날지가 중요하다.

◆탐색전, 그리고 변화에 대한 갈망

‘대전 최초 여성 구청장’이란 타이틀을 거머쥔 박 청장이 보수의 텃밭에 변화의 씨앗을 뿌리며 시민의 삶을 바꾸는 대장정에 나섰다. 지역민은 처음 맞는 여성 구청장이라는 변화에 적응하는 중이고 박 청장 역시 여성 구청장에 대한 선입견 또는 편견 타파를 위해 노력 중이다.

“여성 구청장에 대한 관심과 기대가 너무나 큰 것 같아요. 어깨가 무겁다 못해 무너질 지경입니다. 취임 이후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어요. 얼마 전 동 초도순방이라는 걸 마쳤는데 마치 탐색전 같은 분위기가 읽혔어요. 저에 대해 많이들 궁금해 하시는 것 같더라구요. 비래동에선 이런 질문도 받았어요. 좋아하는 사자성어가 뭐냐는? 그래서 깜짝 놀랐는데 제 정치철학을 엿보시겠다는 의도였겠죠? 저는 정약용 선생님의 목민심서, 논어에도 나오는 불환빈 환불균(不患貧 患不均)이라고 답했습니다. 백성은 가난한 것이 아니라 불공정한 것에 분노한다는 의미입니다.”

박 청장의 정치철학은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라고 했던 문재인 대통령의 정치적 지향성, 촛불혁명에서 보여진 국민적 열망과 맞닿아 있다. 박 청장이 구상하는 대덕구 변화의 시작점도 바로 여기에 있다.

보수의 텃밭에서, 그것도 여성이 잘 할 수 있겠느냐는 우려의 시선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박 청장은 의외로 담담하다. 걱정하는 눈치가 아니다.

“대덕구가 보수의 텃밭이라고 하는데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지금까진 민주당과 진보정당이 모두 동시에 후보를 냈기 때문에 그런 거지 이 지지도를 합하면 보수정당을 뛰어 넘습니다. 이번 선거에서 저는 운이 좋았던 거죠. 진보정당에서 후보를 내지 않은 데 따른 결과입니다. 지난해 출마 선언을 하면서 ‘원래 새로운 역사는 변방에서 이뤄진다’고 말씀드렸는데 그 기회를 얻게 됐습니다. 대덕에서 새로운 역사를 쓰겠습니다.”

◆차출 아닌 자발적 참여, 변화의 원천

대덕구의 변화, 어디서 시작할 것이냐는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박 청장은 ‘주민참여’라고 했다. 소통을 빙자한 불통의 정치를 청산하고 실질적인 참여민주주의의 토대를 마련해야 변화의 원동력을 얻을 수 있다고 박 청장은 확신하고 있다. 유권자의 정치참여 욕구가 얼마나 커졌는지는 이미 ‘촛불혁명’에서 확인된 터다.

“정치의 핵심은 참여민주주의를 어떻게 강화할 것이냐에 대한 것입니다. 우선 기초로의 권한 이양을 의미하는 ‘분권’과 주민 참여에서 비롯되는 ‘자치’라는 두 수레바퀴가 동시에 잘 굴러가야 합니다. 분권을 위해 싸우고 자치 역량을 보강하기 위해 더 노력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자치 역량 강화에 접근하는 방법론 중 하나는 바로 소통인데 이 소통은 태도의 문제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지금까진 소통한답시고 말을 듣긴 했지만 결정은 내가 알아서 할게, 뭐 이런 식이었죠. 그래서 소통이 아니라 불통이라는 비판을 받는 겁니다. 참여도 많이 이끌어낸다고 했지만 자발적 참여가 아니라 차출형 참여가 대부분이었죠. 이제 이런 방식으론 안 됩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기존 의전 관행도 다 바꾸고 있습니다. 구청장이 동네 방문한다고 하면 주민들이 먼저 나와 기다리고 구청장은 모두 세팅이 되면 ‘짠’하고 나타나 꽃다발 받고 박수 받고 했는데 이런 앞뒤가 안 맞는 관행을 바꾸는 것부터 시작하고 있어요. 구청장이 먼저 가서 주민들을 맞이해야 맞는 거죠. 회의 테이블도 모두가 평등한 입장에서 대화할 수 있게 ‘ㅁ’자형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결국 소통의 방법부터 다시 디자인해야 합니다. 번거롭고 때론 비판도 많이 받겠지만 정책의 입안부터 집행 과정, 마무리까지 이해당사자들과 늘 함께해야 한다는 원칙도 견지하고 있습니다. 소통의 문을 열어놓는 것인데 한 예로 한 달에 한 번 목요일에 구청장이 직접 민원인을 기다리는 ‘목요데이트’라는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어요. 오후 4시부터 7시까지 민원을 듣고 함께 해법을 모색하는 거죠. 이것부터 시작할 계획입니다.”

박 청장은 민선 7기 대덕구정의 슬로건을 ‘구민과 함께하는 새로운 대덕’으로 결정했다. 구정에 대한 주민 참여의 문을 활짝 열어놔야 제대로 된 정책을 입안할 수 있고 그래야 그 정책 실행도 무리 없이 흘러갈 수 있기 때문이다. 박 청장은 이를 위해 무엇보다 공직사회의 변화를 요구한다. 박 청장은 ‘책임은 내가 질 테니 창의적으로 일 할 것’과 ‘구청장에게 줄 서지 말고 주민에게 줄 설 것’을 주문했다.

 

◆변화의 바람, 사람에 대한 투자로부터

현재 대덕구가 안고 있는 최대 위기 요인은 사람이 떠나고 있다는 거다. 구 인구는 하루 평균 16.5명씩 줄어든다. 박 청장은 선거운동 과정에서 이 문제에 집중했고 이 문제를 해소할 방법론으로 공약의 키워드를 완성했다. 바로 사람에 대한 투자와 공동체를 살리는 도시재생, 그리고 환경이다.

“살 집이 없어서 떠나는 게 아닙니다. 새 아파트 짓는다고 해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죠. 교육환경·문화시설이 취약하다는데 문제가 있는 겁니다. 돌봄과 교육에 전향적으로 투자해 젊은 부부가 아이를 키우려면 대덕으로 가야한다는 인식이 생길 수 있도록 만들 겁니다. 지역 청소년들이 자존감과 창의력을 키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더 이상 교육 때문에 대덕을 떠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장애인, 다문화가정, 어르신, 영세자영업자, 빈곤여성 등 함께 보살피고 성장할 수 있도록 해야 하 분들을 적극적으로 지원해 더불어 잘 살아가는 아름다운 지역공동체문화를 형성하도록 하겠습니다.”

박 청장의 5대 공약 1순위는 임신에서 보육까지 토털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덕보육센터’ 설립이고 다음이 오정·대화지구 청년창업 클러스터 조성, 신탄진 생태환경관광특구 지정 추진, 무장애시설 확충, 건강 100세 시대,‘대덕건강생활지원센터’ 설립 순이다.

“SOC, 하드웨어 측면의 개발도 물론 필요합니다. 연축지구 행정주거타운 조성과 이를 통한 신청사 이전, 충청권광역철도 등 굵직한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건 소프트웨어 측면의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하는 것입니다. 개발을 하더라도 도시재생의 관점을 강조한 개발이 필요합니다. 청년과 젊은 예술가들이 모이는 오정동 청년창업센터와 대회동 산업예술촌 조성을 통해 대덕구 구도심을 살리겠습니다. 현재 추진되고 있는 신탄진 도시재생사업과 신탄진생태환경특구를 연결해 새롭게 도약하는 신탄진을 만들겠습니다.”

◆융합의 시대, 구 자산의 재발견

4차산업혁명 시대의 키워드는 융합이다. 이질적으로 여겨졌던 것들이 융합을 통해 스토리텔링이 되면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게 핵심이다.
“대덕구엔 3가지 자산이 있습니다. 계족산·대청호와 같은 생태환경자산과 회덕향교·동춘당 등 역사문화자산, 일자리와 활력이 넘치는 산업자산입니다. 이 자원을 융합해 새로운 도시 발전 모델을 만들어내는 데도 노력하겠습니다.”

글=이기준 기자 lkj@ggilbo.com
사진=전우용 기자 yongdsc@ggilbo.com

박정현 대전 대덕구청장은
바꾸는 건 체질적으로 싫어하지만 낡은 관행과 권위주의, 행정편의주의에 대한 변화엔 단호하다. 집무실은 전임 구청장의 것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내용물이 책과 보고서들로 바뀌었을 뿐이다. 그러나 시민운동·환경운동 활동가로서의 경력에서 다져진 비판의식과 이면을 바라보는 발상의 전환은 자신을 채찍질하고 끊임없이 변화를 요구하게 한다. 이것이 그의 정체성을 규정하고 그를 지탱하는 힘이다. 2010년부터 8년 연속 행정사무감사 우수의원상을 수상했고 지난해 대전시청 공무원노조가 선정한 ‘참 좋은 시의원상’을 수상했다. 대전삼성초·호수돈여중·청란여고·충남대 법학과를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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