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반환 운동에 앞장 선 여인의 사연

아름다운 멜리나 메르쿠리(Melina Mercouri)를 처음본 건 아테네 거리 소음 가득한 하드리아누스(Hadrianus) 개선문 앞에서였다. 사람은 아니었고 동상이었다. 이곳은 그리스에서 너무나 유명한 만남의 장소인 듯했다. 그렇게 무심히 지나쳤다가 다시 그녀를 만난 건 신문을 통해서였다.

파르테논마블(Parthenon Marles)을 돌려달라는 그리스 총리의 절규를 읽다가 또다시 그를 만났다. 아름다운 그녀는 배우였다. 그리스뿐만 아니라 유럽, 미국에서도 인기가 올라갈 즈음 그녀는 영국에서 그리스 파르테논(Parthenon) 신전 조각이 버젓이 전시돼있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는다. ‘어떻게 이럴 수 있단 말인가, 그리스가 이렇게 살아있는데 파르테논 신전관이 영국박물관의 제1관을 차지하고 있을 수 있다는 말인가

이후 그는 예쁜 배우로만 남지 않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그는 그리스가 1967년 요르요스 파파도풀로스(Georgios Papadopoulos) 독재 아래 놓이면서 적극적으로 독재비난에 나섰다는 이유로 곧 추방당했다. 이 때문에 그리스를 떠나 미국에 입성한 그는 그 곳에서 파르테논마블 반환운동을 이끌었다. 치열한 노력 끝에 할리우드(Hollywood)에도 그와 뜻을 같이하는 배우들이 늘었고 특히 조지 클루니(George Timothy Clooney)2014년 베를린 영화제에서 인터뷰 도중 그리스 파르테논을 언급할 정도로 이를 지지했다. 조지 클루니의 아내이자 변호사인 아말 알라무딘(Amal Alamuddin)은 파르테논마블 반환팀 전문변호사이기도 했다. 숱한 우여곡절을 거쳐 그는 독재가 끝난 1981년 문화부장관이 돼 그리스로 돌아왔고 곧 파르테논반환 운동에 속도를 올렸다.

파르테논 마블을 놓고 긴 줄다리기의 시작된 것은 오스만투르크(Osman Empire)가 그리스를 지배하던 1799년부터다. 오스만 대사로 왔던 영국의 토마스 부르스 엘긴(Thomas Bruce Elgin)이 자신의 사비를 써서 파르테논 조각을 사가지고 간 게 문제의 발단이었다. 그 조각은 이내 영국정부가 사들였고 엘긴마블이라는 이름으로 현재까지도 대영박물관에 전시 중이다. 특히나 엘긴이 영국에 제시한 오스만으로의 반출허가서는 번역본은 있으나 원본이 없어 지금도 말만 무성하다. 오스만은 공문서 관리가 철저하기로 유명해 사소한 것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메르나 메르쿠리는 있는 모든 힘을 동원해 반환을 요구했으나 영국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바티칸과 미국 게티박물관, 독일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는 즉시 마블을 돌려주며 이와 대조적인 모습을 보였지만 영국은 귀를 닫고 손을 오므렸다.

그리스는 철판에 콩 던 지 듯 요구할 때마다 튕겨져 나오는 상황이 어이없었으나 지금도 멈추지 않고 있다. “내가 죽기 전에 파르테논 마블이 반환되는 것을 보고 싶다. 나는 다시 태어나서라도 그 장면을 보고 싶다.” 그녀가 세상 떠나면서 남긴 말이 지금까지도 그리스의 파르테논 반환운동을 이끌고 있는지 모르겠다. 2002년 그리스 문화부장관 토니 뱅크스(Tony Banks)14명의 국회의원은 영국을 상대로 파르테논마블 반환을 요구했다. 하지만 영국은 2007년 완전거부를 선언 했다. 세계 지식을 이끄는 책무, 아크로폴리스(Acropolis)에 전시할만한 박물관이 없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댔다. 그 당황스런 고집에 그리스는 아크로폴리스 신()박물관을 역대급으로 지어 영국의 주장을 일축했다. 그러나 영국은 대여는 생각해보겠다고 한다. 2018년 다국적 변호인으로 무장한 그리스는 영국에 다시 도전장을 던졌다.

20개국, 578개 기관과 개인에게 약탈된 우리의 문화재는 2018년 현재 156203점에 달한다. 가까운 일본에 빼앗긴 유물만 68000점이다. 그리스 안타까워 할 것이 아니었다. 우리의 어떤 미인이 앞장 서 줄 것인가.

·사진=김기옥 님(협동조합 사유담(史遊談))

정리=이준섭 기자 ljs@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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