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로 본 민주주의와 애국

영화를 보다가 너무 두려워 휴대폰을 떨어뜨렸다. 빨갱이가 무서웠던 게 아니라 배우가 두려웠다. 배역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진정성이 느껴지는 그 이글거리는 눈빛은 진심이었다. 곽도원이었다. 영화 변호인에서 만두(?)같이 생긴 그를 처음 봤다.

우리 모두는 배우 송강호를 보러 극장에 갔다. 가슴에 있는 미안한 마음으로 변호인은 극장에서 봐야겠다고 생각한 뒤 나선 길이었다.

대한민국 헌법 제12, ‘대한민국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국가란 국민입니다. 그런데 증인이야말로 그 국가를 아무 법적 근거도 없이 국가보안문제라고 탄압하고 짓밟았잖소. 증인이 말한 국가란, 이 나라 정권은 강제로 찬탈한 일부 군인들 그 사람들 아니야. 헛소리말고 진실을 얘기해라. 니는 니가 애국자 같나? 천만에. 애국자가 아니고 죄 없고 선량한 국가를 병들게 하는 버러지고 군사정권의 하수일 뿐이야. 진실을 얘기해라. 그게 진짜 애국이야.”

구구절절 옳은 소리로 감동으로 몰아치던 송강호의 울부짖는듯한 명장면 끝에 두 눈이 이글거리며 촉촉하게 내뱉는 곽도원의 단 두 마디는 무서웠다. 차동영 경감 역으로 분한 그는 나름의 자리에서 애국 중이었다. 빨갱이로부터의 휴전일 뿐 아직도 전쟁 중인 나라를 지켜야하는 눈물겨운 애국이었다. 영화가 포커스를 송강호는 선()이라 맞췄을 뿐 곽도원 역시 최선을 다해 국가를 지키고 있었고 그 진심을 알아주지 못하는 송강호가 어쩌면 서운하고 답답하다 여겼을 것이다. “입 닥쳐. 이 빨갱이 새끼야.”

다리가 후들거려서 그 충격에 이가 덜덜 떨렸다. 어떤 이념에 홀려 모두다 제 나름의 방법으로 애국하고 있었다. 심지어 태극기 부대조차도 말이다.

서론이 길었는데 오늘 주제는 요르요스 파파도풀로스(Georgios Papadopoulos). 그리스 펠로폰네소스반도의 아카이아에서 태어나 육관사관학교에 들어간 그는 군 생활로 청춘을 시작, 대령이던 지난 1967년 사회주의 타도를 목표로 쿠데타를 일으켰고 1974년 사형선고를 받기까지 장장 67개월 간 그리스를 통치했다.

그의 시작은 우리에게 익숙한 계엄령이었다. 2차 세계대전과 그리스 내에서의 3년 간 내전을 온몸으로 겪으며 반()공산주의자로 다시 태어났다. 그는 그리스를 구하고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이 문장만으로는 참으로 옳았다. 그러나 그의 말을 듣지 않으면 죽거나 고문을 당했고 무인도였던 마크로니소스 섬에 가두고 죽을 때까지 방치했다.

비밀경찰을 두고 수많은 그리스인들의 삶을 일거수일투족 감시하며 끔찍한 공포정치를 자행했다. 언론을 통제하고 사상을 탄압했다. 말 그대로 군사독재였다.

19731117일 아테네과학기술대학교 학생들에 의해 군사독재에 저항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군부는 이에 발포로 맞섰다. 30명이 넘는 학생들이 싸늘하게 쓰러져갔다. 시위는 전국으로 확산되던 중 다행스런 일 인걸까. 요르요스 파파도풀로스는 같은 해 1125일 심복이던 디미트리오스 요안니디스(Dimitrios Ioannidis)에 의해 실각됐다. 아이러니하게 그가 그렇게 믿었던 비밀경찰의 최고책임자에 의해 권력의 끝을 마주한 것이다. 곧 사형선고를 받았지만 그는 종신형으로 경감, 보석도 거부한 채 1999년 암으로 폐쇄된 병원에서 삶을 마쳤다. 그러나 끝까지 그는 자신을 공산주의로부터 민주주의를 지킨 수장이라 믿었단다. “나는 조국을 공산주의로부터 지켜냈다.”

그도 진심이었다. 군인으로 살았던 평생의 삶으로 바라본 세상, 교사였던 아버지의 가르침의 기억에서 기인한 책임감. 국가의 위기는 요르요스 파파도풀로스에게 반드시 해결해야하는 역사적 사명이었는가 보다.

어떤 리더는 시종일관 자신에게 비협조적인 반대파를 숙청하고 다른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대학교육에 사사건건 관여했다. 교과서를 새로 만들려했고 장발을 인정하지 않았으며 미니스커트를 단속했다. 악기를 빼앗고 부르지 못하는 노래, 읽을 수 없는 책을 지정해 이에 따르지 않으면 사회와 분리시켰다. 누굴까. 익숙하게 이 땅의 어떤 리더가 겹쳐 보이지 않는가. 그러나 이러한 인권탄압은 요르요스 파파도풀로스의 수법이었다.

어쩜 이렇게 방법이 같을 수 있을까. 또 한 가지, 이런 허상을 가진 리더들 뒤엔 신기하게도 미국이 있었고 더 이상 말을 듣지 않으면 그로부터 버림받았다. 우연처럼 이상한 커넥션을 발견하곤 놀라 또다시 떨고 있는 중이다.

사회주의가 아니면 민주주의는 아닌 것이다. 우리는 지금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를 보장받고 있을까. 그렇다면 민주주의가 맞다. 아니라면 우리는 아직도 민주주의 귀신으로부터 속임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민주주의 국가에 살고 싶다.

·사진=김기옥 님(협동조합 사유담(史遊談))

정리=이준섭 기자 ljs@ggilbo.com

저작권자 © 금강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