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 태양도시 올래 ③

올래는 과연 팬주룽을 대표하는 해양도시가 되어 있었다. 해안에는 정박한 배들이 바다를 뒤덮을 듯 근덕거리고 있었다. 이 배들은 올바가 바닷가 근처에 아예 대형 조선소를 만들고 장인들에게 기술을 전수한 뒤부터 본격적인 양산에 들어갔다. 이 배들은 바다건너 남쪽세상 사람들에게 팔아 국고를 튼튼하게 하는데 보탬이 되기도 했다. 올래의 상설시장은 만국박람회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시장에는 상어는 물론 올래 사람들이 한 번도 잡아보지 못한 고래와 멀리 다른 세상에서나 볼 수 있는 희한한 고기들도 있었다. 올래의 어부들은 올바가 만든 배를 타고 별천지 같은 신대륙을 두루 돌아다녔다. 그곳 사람들은 교환할 수 있는 진귀한 물건을 싣고 올래로 들어와 필요한 물건들로 바꾸어 갔다.
그들 중 일부는 팬주룽의 수도인 검맥질로 가서 대망새가 이룩한 찬란한 문명의 총아를 배워가기도 했다. 문명이 뒤진 이방인들에게 팬주룽은 지상의 낙원이자 세상의 중심처럼 보였다.

올래의 새로운 역사는 사실상 매득의 손에 의해 만들어졌다. 교역에 관한 한 발군의 능력을 지니고 있었던 매득이 대망새를 대신해 바다세상과의 또 다른 모험을 용감하게 시도하고 성공으로 이끌었기 때문이다. “……”

“매득 어르신! 어르신이 바다세상을 하나로 통합시키셨군요. 참으로 위대한 일을 해내셨습니다.” 대망새는 벅차오르는 감동을 감당할 수 없어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미리은은 참나무 뿌리처럼 단단해진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재기와 푸른돌을 비롯한 신료들은 마치 실성한 사람처럼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눈앞에 펼쳐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광경들을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말은 들었습니다만 솔직히 이 정도인줄은 몰랐습니다.”

재기는 매득을 마치 신처럼 바라보며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었다. “제가 이룬 일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저는 그저 바가나치께서 만들어 내신 위대한 문명을 받들어 새 세상 사람들과 평화로운 동맹을 맺기 위해 노력한 것뿐입니다.”

매득이 담담한 눈빛을 하고 말했다. 대망새는 좀 더 오래 올래에 머무르면서 이방세계와의 교역을 더욱 활성화시키고 싶었다. 소리기는 배를 타고 해뜨는 동해바다로 가보자고 제안도 했다. 그러나 서둘러 검맥질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예년과 달리 겨울이 일찌감치 찾아 온데다가 유난히 추웠다. 게다가 노고록의 북쪽으로 이민족들이 구름처럼 몰려든다는 첩보가 있었기 때문이다.

가을의 끝자락이 어룽거리는가 싶더니 북쪽에서 매서운 찬바람이 불어왔다. 바람은 좁쌀만한 눈을 앞잡이로 내세워 검맥질의 움집을 헤집고 송곳처럼 파고들었다. 움집 안 사람들은 화덕을 중심으로 꼼짝도 하지 않으려 했다. 소리기와 배라기는 군사들을 동원해 마른 억새를 몇 단씩 움집 안으로 넣어 주었다. “이 억새로 칼바람을 막으시오! 불을 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불조심을 외치는 병사들의 소리가 오망한 눈보라에 휩쓸려 강변으로 날아갔다. 그 즈음 대망새는 드루봉에서 신료들과 회합을 하고 있었다. “올 겨울은 이상하리만큼 빨리 찾아오고 추위도 대단한 듯합니다. 바담들께서는 모두 맡은 분야에 만전을 기해 주십시오. 특히 식량을 담당한 궁둥백 바담과 옷을 담당한 모대기 바담, 집을 담당한 도멕바담께서 애써 주셔야겠습니다.”

“바가니치, 걱정하지 마십시오. 옷과 식량, 집을 담당한 바담은 물론 모든 바담들이 한 마음 한 뜻으로 겨울나기에 만전을 기하고 있습니다.” 바담들의 대표인 재기가 만조백관(滿朝百官)을 대신해서 머리를 조아렸다. “알겠습니다. 호늘바담을 중심으로 회의를 더 진행해 주십시오. 저는 잠시 어머니를 돌아보고 오겠습니다.” 공식적으로 바가나치의 여자가 된 미리은은 시어머니 멘도루의 처소에 함께 있었다. 배라기의 여자와 가랑은 물론 소리기의 여자 아까비와 올바의 여자 비발도 함께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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