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흡한 대책···누진제 폐지 요구

#. 기록적인 폭염에 시름하던 주부 정 모(59·대전 중구 중촌동) 씨는 큰 결단을 내렸다. 큰 맘 먹고 에어컨을 장만하기로 한 것이다. 무더위가 시작된 후라 설치까지 2주의 시간이 더 걸렸지만 그래도 더위를 잊게 해주는 시원함은 행복감을 선사해 줬다. 문제는 마음껏 에어컨을 틀기에는 후에 만나게 될 ‘전기료 고지서’가 부담 된다는 점이다. 정 씨는 “에어컨을 장만할 때 에너지소비효율등급 단 하나를 고려했다”며 “한시적으로 전기요금을 인하해준다지만 여전히 부담이 되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내놓은 7·8월 한시적 전기요금 완화 대책이 오히려 ‘누진제 폐지’ 여론에 기름을 부은 꼴이 됐다.

정부는 지난 7일 7~8월 두 달간 한시적으로 1·2단계 누진구간을 각각 100㎾h 만큼 확대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전기요금 완화 대책을 내놨다. 이 대책에 따르면 누진제 2단계 이상에 속한 1512만 가구의 전기료가 7~8월 두 달간 평균 1만 370원(19.5%) 인하된다.

누진제 완화로 국민이 받는 혜택은 총 2761억 원에 달한다지만 국민 개개인이 체감하기엔 그리 크지 않다보니 불만의 목소리가 나온다. 컸던 기대감이 허탈감으로 변함에 따라 이러한 불만은 누진제 폐지에 불을 지피는 형국이다. 9일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 올라온 누진제(누진세) 관련 청원은 70건에 달한다. 폭염이 시작되고 완화 대책이 나오기 전부터 합산하면 1000건을 훌쩍 뛰어넘는다.

한 청원인은 “전기로 에어컨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가전제품이 별로 없던 시절에 만들어진 누진제를 집안 곳곳이 가전제품으로 둘러싸인 지금에도 적용한다는 건 옳지 않은 것 같다”며 “재난 수준의 폭염이라면서 전기요금 할인 만 원은 너무하다. 살기 좋은 대한민국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한시 지원 대책에 사용 가능한 재원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국민들의 요금 할인 기대에 충분치는 않을 수 있다. 다만 한정된 재원 범위 내에서 가능한 한 많은 국민들께 요금 인하 혜택이 골고루 돌아갈 수 있도록 노력한 결과”라고 해명했다. 이어 “이번 한시 지원 대책은 재난 수준의 폭염에 대응한 긴급 대책의 성격”이라며 “누진제를 포함한 전기요금 체계 전반에 대한 근본적인 제도 개편 방안을 국회와 함께 공론화 과정을 거쳐 마련할 계획”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조길상 기자 pcop@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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