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호 대전민예총 이사장

그간 매주 화요일에 해 주던 아들네 집 청소를 이번엔 목요일로 옮겼다. 화요일 저녁에 봉사하던 장애인야간학교가 방학을 했기 때문이다. 마침 목요일에 우리 아파트 지하주차장 물청소로 차량을 이동해야 해, 겸사겸사 요일을 바꾸게 된 것이다. 

아내는 손자들 돌보느라 월요일 아침 일찍 아들네에 가서 생활하다 금요일 저녁에 집으로 돌아오니, 퇴직하고 주말부부가 됐다. 초등학교 교사인 며느리가 방학인데도 대학원 수업으로 나가야 되니, 애들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아내가 두루 살펴주게 됐다. 

세종시에서 대전 아들네에 갈 때는 볼 일을 모아서 봐야 한다. 일찍 농수산시장에 가서 과일과 야채를 사고, 집안 청소를 한 뒤, 점심엔 전에 살던 곳에서 친하게 지내던 지인과 식사 약속이 있고, 저녁엔 계속되는 화재사고로 ‘불자동차’라 불리며 천덕꾸러기가 된 자동차의 안전점검을 받아야 한다. 불자동차 ‘베엠베(BMW)’를 탄 지 이제 만 6년 하고 세 달이 됐다. 그간 소모품 교체를 빼곤 고장이 없어 좀 불안하면서도 괜찮겠지 하며 미적댔는데 친구가 연락을 했다. 부산의 한 대학에서 산야초와 약초를 가르치다 퇴직한 친구는 회갑 기념으로 아들이 사준 ‘520디젤 모델’을 타는데, 화재사고의 주력 차종이라 점검을 받기로 했다는 것이다. 나는 스포츠형 다목적 차량으로 아직까지는 화재사고가 없는 차종이라 좀 느긋했지만, 한편 불안하고 또 정부에서 강제로 운행을 중지시킨다니 안전점검을 받기로 했다. 

농수산시장에 주차를 하고 출근시간에 맞춰 차량 서비스센터로 전화를 하니 계속 통화중이다. 이렇게 리콜 대상 차량이 한꺼번에 몰리면 14일까지 점검을 받을 수 있을지 걱정이 됐다. 차량을 구입하며 인연을 맺은 김 과장에게 전화해 도움을 청했다. 김 과장은 어차피 예약은 어려울 테니 저녁식사 후 곧장 서비스센터로 가면 안전점검을 받을 수 있을 거란다. 밤에는 일반 정비차량과 겹치지 않고 정비사들이 24시간 근무하며 안전점검을 하니 그냥 가보라 했다. 저녁 7시쯤 정비센터에 가니 정문 앞에까지 점검을 기다리는 차량이 줄을 지어 서 있었다. 

정비사들의 안내로 시동을 켠 채 키만 뽑아 사무실에 접수하러 들어갔다. 차량번호를 대고 확인하니 리콜 대상 차량이 아니라며 접수를 받아주지 않았다. 내 차종은 2013년 5월 구입했는데, 2014년 차량부터 리콜 대상이란다. 그래도 온 김에 그냥 안전점검을 받아보려 했지만, 보닛을 연 채 정비소를 가득 메운 차량들을 보니 밤새 기다려야 해 그냥 돌아가기로 했다. 리콜 대상 아닌 차량도 불이 난 경우가 있어 찜찜하지만, 그나마 리콜 대상이 아니어서 강제로 운행 정지될 일은 피했으니 다행이다 싶었다. 

집으로 돌아가 아내에게 저간의 사정을 알리려 했는데,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리콜 대상이 아니어서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하니, 일단 더위에 운행하는 걸 자제하라고 했다. 중간쯤 가는데 갑자기 세찬 소나기가 내리면서 민망한 일이 벌어졌다. 뒤에 오는 차들이 저만큼 멀리서 따라오고, 어떤 차는 옆 차선으로 해서 휙 앞질러 내빼는 것이었다. 혹시라도 불이 날까봐 일부러 피하는 것이니, 어쩌다 이렇게 기피 대상이 됐나 싶어 좀 서글펐다. 

아이들 대학과 대학원 뒷바라지 하느라 가스차를 15년이나 탔다. 딸이 신촌 원룸에 살 때는 필요한 살림살이를 그 차로 다 실어 날랐다. 오래 타다 보니 바퀴에서부터 윈도브러시 모터까지, 차체를 뺀 거의 모든 부품을 갈았다. 지하주차장에서 시동을 걸면 골골거리는 소리에 다들 쳐다보곤 했다. 애들이 졸업하고 학자금 융자를 4년 분할상환하고, 또 다들 결혼해 나가니 여유가 생겨 차를 바꿨다. 이제 20년을 타야지 하며 연비가 높고 안전하다고 소문난 수입차를 큰 맘 먹고 구입했는데, 천덕꾸러기가 됐다. 그래도 잘 정비하고 달래가며 함께해야지, 중고로 팔아 누구에게 걱정을 끼치겠는가. 다만 유감인 것은, 세계 굴지의 자동차 명가답게 자신의 잘못을 솔직히 사과한 뒤 흔쾌히 부품을 교체하고 프로그램을 정비했다면 오히려 그 명성을 지켰을 텐데, 정말 실망스럽고 유감이다.

저작권자 © 금강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