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윤 원자력안전과미래 대표

이정윤 대표

탈핵 에너지 전환을 기치로 출범한 문재인정부에서 지난 7일 신임 손재영 원자력안전기술원장이 취임했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급증한 국민적 관심 속에 원자력 안전정책은 그동안 장기적으로 확고한 기반을 다지지 못하고 현안에 휘둘려 그것에 대응하는 데 급급했다. 이 점은 현 정부 들어서도 다름 없다.

2016~2018년 밝혀져 현안이 된 한국원자력연구원의 폐기물 무단 방출과 사용후핵연료 관리 미흡에도 규제 당국의 책임있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2016년 발견되기 시작한 격납용기 철판 부식은 무수한 해외 사례에도 불구하고, 안이하게 대응하다가 주민 여론에 떠밀려 전반적인 조사를 벌였고, 상당 수준의 부실공사를 의심케 하는 대규모 격납용기 콘크리트 공극까지 확인됐다.

전남 영광에서 소문으로 떠돌며 확인되지 않다가 2017jtbc 보도로 증기발생기 내부에 망치가 들어간 사실이 드러났다. 이는 유사시 대규모 방사능 방출로 직결될 수 있는 아찔한 사건으로 그동안 운에 맡긴 우리나라 원전의 안전관리 실태를 엿보게 했다. 또 최근 라돈침대 사건으로 전국이 요동쳤다. 생활방사선 문제를 방치하고 사전대응을 제대로 하지 못하다가 사건이 터지자 허둥지둥 관료들에 의한 안전 판단을 번복, 혼란만 부추기는 결과를 가져왔으며, 이 과정에서 전혀 과학적이고 안정적인 대응을 하지 못했다.

빙산의 일부라 할 수 있는 이런 모습은 만일의 원전 중대사고 시 국민이 안심하고 대응을 맡기기에는 불안한, 절차만 따지는 관료적이고 무력한 조직임을 보여준다. 현 정부의 원자력 안전 대응은 지난 정부와 비슷하거나 오히려 약화된 수준으로, 세월호 촛불 정부로서 정책적으로 뚜렷이 개선된 모습을 전혀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 손 원장의 취임이 주목된다. 그는 지난해 12월 시민사회의 강한 반대에 부딪혀 원자력안전위원장 후보를 사퇴한 장본인이며 그동안 원자력안전기술원장 취임을 위해 치밀한 준비를 해 온 것으로 판단된다. 지난 530일 임원추천위원회의 공정성 문제가 언론에 보도까지 됐음에도 별다른 해명 없이 손 씨를 취임시킨 것은 과연 어떤 안전철학에 의한 선택인지 궁금하게 한다.

안전 문제에 있어 관료화에 따른 심각성은 후쿠시마 원전사고의 교훈이며 경고이다. 보고만 하다 끝난 세월호 사건도 관료화 문제의 심각성을 전 국민에게 보여줬다. 손 원장은 2013년 생활방사선법 제정을 총괄하면서 전문성이 전혀 없는 안전재단을 생활방사선 전문기관으로 지정했는데, 이것이 라돈침대의 무기력한 초기대응의 한 원인이었다. 원자력안전위원회 사무처장 시절에는 관료 중심으로 원안위 운영을 추진하다 신임 이은철 위원장에 의해 20135월 퇴출됐다. 관료에 의한 원안위의 전횡이 우려됐기 때문이었다.

그가 2015년 원자력통제기술원장으로 돌아온 배경도 적폐로 현재 구속된 당시 특수권력의 도움에 의한 것이란 소문이 자자했는데도 현 정부에서 관료 출신인 그를 원자력 안전전문기관장에 중용한 것은 지난 정부보다도 못한 안전철학의 빈곤을 보여주는 것으로 심히 우려된다. 실제 현 정부의 안전정책과 철학의 빈곤으로 비쳐지는 많은 사건들은 정권 초기여서 크게 부각되지 못했을 뿐이다. 현행 또는 향후 발생할 수 있는 안전 문제를 정부가 어떻게 근본적으로 대응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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