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대화초 박정은 교사

퇴근길에 중고 서점에 들렀다가 중고 서점에서 보기 드문 빳빳한 비닐포장까지 돼있는 책이 눈길을 끌었다. 슬로리딩에 관한 책이었는데, 비닐포장 안에는 바로 전에 이 책을 읽은 사람의 추천평이 들어 있었다. ‘독서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열어 준 책’이라는 글귀는 독서에 관심이 있는 나에게 흥미를 끌었다. 그렇게 한 독자의 추천평만 보고서 책을 샀다.

한 때, 하루 한 권 독서법이 유행을 끈 적이 있다. 하루에 한 권씩, 3년간 1000권의 책을 읽으면 인생이 바뀐다길래, 나도 일단 얇은 책으로 도전했다.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책 읽을 시간을 확보하기도 어렵고 설령 하루에 한 권을 읽었다고 한들, 서평을 써놓지 않으면 제목조차 가물가물해지기 일쑤였다. 그랬던 기억이 있던 나에게 슬로리딩은 생각의 전환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됐다.

슬로리딩은 말 그대로 천천히 읽기이다. 그러나 그저 천천히 읽기만 하면 되는 게 아니라, 책 한 권을 골라서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깊이 있게 읽는 것이다. 나는 그동안 책의 내용을 정확하게 이해해 내 것으로 만드는 것보다는 읽은 권수에 매달렸다. 자기 계발서나 쉬운 소설의 경우에는 빠르게 읽을 수 있었지만, 인문학 도서는 어려운 낱말이 많고 깊이 생각하며 읽어야 할 부분들이 많아 완독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대강 읽다가 포기하는 경우가 많았고 내용은 몰라도 끝까지 읽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며 마무리했던 적이 많았다.

학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학교에서는 책을 많이 읽는 학생에게 다독상을 준다. 그러다보니 학생들 사이에서는 경쟁이 생겨 읽지도 않은 책들을 대출하고 반납하기를 반복한다. 그리고 책을 많이 읽는 학급에도 상을 주다 보니, 선생님들도 학생들의 이런 행동을 반쯤 눈감아주는 것도 사실이다. 다독상은 책을 읽지 않는 아이들에게 책을 읽는 동기를 부여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독서의 의미와 슬로리딩의 효과를 고려한다면 다독보다는 정독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고 분위기를 조성해주는 것이 더 의미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슬로리딩의 구체적인 방법은 무엇일까. 책을 읽으면서 어려운 낱말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고 문장을 만들어보거나, 책을 읽으면서 궁금한 점을 기록하고 여러 방법으로 조사해 자신만의 답을 찾아본다. 직접 경험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토론 거리를 찾아 가족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 볼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양보다 질이라는 점이다. 그동안 거실에 진열된 책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면서 ‘우리 아이가 오늘 몇 권의 책을 읽었지? 이만큼은 읽었어야 했는데.’라고 생각했다면 이제는 단 한 권을 읽더라도 슬로리딩이 제대로 이뤄졌는지, 책을 온 몸으로 흠뻑 느꼈는지 생각해보게 된다. 오늘부터라도 슬로리딩을 시작해보자. 자녀에게 책 읽어라 하기 전에 같이 책 읽어보자고 하면서 함께 천천히 읽어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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